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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20대

해군52 2002. 6. 20. 22:46
한동안 열심히 산에 다니면서도
복장 따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등산화 하나는 제대로 신었지만
겨울이면 파카를,
여름이면 반바지에 아무 티셔츠나 입고
지리산이든 설악산이든 북한산이든
여러해동안 그렇게 헤집고 다녔었다.

그런데 요즘 등산복을 몇벌 샀다.
그것도 색상이나 모양에 상당히 신경 쓰면서 말이다.

산에 다니는 시간으로 보면
한창 때의 10% 정도밖에 안 되는데, 왜 그랬을까?


지난주에도
땀을 날려 보내는 쿨맥스라는 원단으로 만든
검정색 바지와 반팔티를 한 벌 새로 샀다.

집에 와서 그 옷을 입어보니까
아들 녀석이 제비같다고 해서
늙은 제비도 있냐고 하면서 한참 웃었다.


그런데 그 옷을 평상복처럼 입고 나갔더니
그날 만난 친구가 20대 같다고 했다.
은근히 기쁜 표정으로
<20대? 설마?> 했더니

초치는 말을 한마디 덧붙였는데...
<무늬만 20대>란다.

에고, 그러면 그렇지!
20대는 무슨 20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무늬만이라도 20대라면
그것도 대단히 괜찮은 말이다.


이제는 몸이 안 따라주니까
복장으로라도 카바해야 할 것 같다.
여인네들 얼굴에 받은 훈장을
화장발로 감추듯이 말이다.


무늬만이라도 좋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20대로 보이고 싶다면
이거 너무 애처러운 바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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