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와 저녁을 먹었는데 그들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한 친구가 먼저 말했다.
전에는 책을 잘 모아 두었었는데 얼마전에 10박스 이상을 버렸어.
모아 두어 봐야 짐만 되고 버리는 게 좋은 거야.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나도 그래, 한번 본 책은 버리는 게 맞아.
그래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생기거든.
먼저 친구가 한술 더 떴다.
나는 말야, 졸업앨범도 다 버렸어.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랬다.
???? ..... ????
나는 원래 쓰던 것들을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가지고 있어야 별 쓸모가 없고 짐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도 버리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시절에 보던 을유문고, 삼성문고, 문예문고 같은
문고판으로부터 최근에 산 책까지 가득해서
이사할 때면 이삿짐센터 사람 눈치보게 되고
편지는 중학교 때 받았던 것부터 전부 상자 속에 들어 있고
학교 성적표와 일기장도 모두 파일박스에 들어 있고
명함 또한 받은 것은 대부분 명함철에 들어 있고
앨범이라면 물론 국민학교부터 꼬박 잘 보관되어 있고
사진 앨범도 결혼식 신혼여행 포함해서 13권이나 갖고 있고
우리 애들이 태어나서 처음 찍은 것부터 중학교까지 사진은
내가 전부 앨범 만들어 주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거의 10년동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3개월분씩 묶어서 갖고 있었고
(결국 작년에 60~70년대 물품을 수집하는 분에게
시집 보냈는데 가끔씩 보고 싶다)
그러고 살았는데
책을 버려야 하고 심지어는
졸업 앨범까지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놀랄 수밖에...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책이란 게 일단 한번 보고나면
다시 보게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서
대부분 책장에 꽂아 놓게 마련인데
그러자면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이사하려면 옮기기 힘든 짐이고
오래 되면 정보가치도 별로 없게 되고
결국 불필요한 물건이구나.
그러니 아주 중요한 책이 아니라면
보고나서 필요한 사람에게 주든가
아니면 그냥 버리는 게 맞겠구나.
그래, 나도 정리 좀 하고 살자!
그리고 집에 와서
책장에 빼곡이 쌓인 책들을 둘러 보자니까
전공관련 책들은 그래도 갖고 있어야 하겠고
경제나 경영에 관한 책들은 다시 볼 것 같고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이런 책들은
여행이나 탐험에 관한 책들은 혹시 가게 되면 참고해야겠고
건강이나 운동에 관한 책은 참고할 기회가 더 있을 거 같고
소설책들은 한번씩은 더 봐야 할 거 같고
문고판 소책자들은 한권씩 들고 다니면서 다시 보면 되겠고
어느 책은 누구에게 받은 거라서
어느 책은 어디서 사 온 거라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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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의 이유로
버릴 책이 거의 없는 관계로
그냥 끼고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