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녀!
정치적인 발언이거나 달리 사랑할 여자가 없어서가 아니고 그녀는 정말 사랑스럽지. 그녀를 만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 이거 아주 놀라운 일이지!
그녀는 키가 좀 작고 조금 통통하지. 얼굴은 동그란 편이지. 그래서 '달덩이'라고도 하고 '동글이'라고도 부르지. ‘해달’이라고 하면 그녀가 아주 싫어하지. 그런데 사실은 동물의 세계에서 보는 해달하고 많이 닮았지.
피부는 아직도 희고 매끄럽지. 원단을 아주 좋은 걸 썼다더군. 좋은 원단으로 옷을 만들면 오래 입어도 좋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팔뚝이나 종아리가 좀 굵지. 내가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그녀는 싫어하지.
입이 작은 건지 목구멍이 작은 건지, 음식을 한 입에 많이 먹지 못하지. 이런 거 조신한 거 맞지? 젓가락질하는 폼이 좀 남다르긴 한데 그것도 개성이잖아, 그치?
그녀도 나처럼 영화를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나하고 극장에는 같이 안 가지만 비디오는 많이 보거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도 잘 해 주고 영화배우나 내용은 모두 꿰고 있지.
그런데 이상하게 알랭 들롱은 물론이고 마이클 더글러스나 리차드 기어, 이런 배우들은 싫대. 맷 데이먼이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런 배우들을 좋아하더라고. 젊은 남자들이 좋은가 봐.
예전에 그녀와 모임에 가면 다들 그녀에게 말붙이려고 난리가 나고, 그러면 아주 도도한 자세로 대답하고 노래 안 시켜주면 삐지고 그러더니 요즘에는 늙어서 그러는지 빼더라고. 그래도 분위기 있는 발라드든지 ‘오빠 나만 바라봐~~~’ 뭐 이딴 노래까지 곧잘 해. 높은 음에서 좀 딸릴 때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신문 편집장을 했다던가. 글 솜씨도 아주 괜찮아. 깨알 같은 글씨로 글을 아주 잘 쓰지.
그녀는 나하고 전공이 같아서 ‘의사능력이 없으니까 무효’라든가, ‘범죄의 구성요건이 되는지’라든가,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라든가 하는 얘기도 곧잘 하지. 그러면 다른 식구들은 무슨 소리인가 하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
그런데 그녀가 어느 날부터 나를 배신하고 한 젊은 남자를 사귀고 있더라구, 세상에. 처음에는 잠시겠지 하면서 그저 모른척했는데 그게 아주 오래 지속되더라구. 어쩌겠나? 나를 완전히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했지, 뭐.
밸도 없냐구? 나도 첨에는 그녀가 평생 내 곁에만 있을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 세상일이 억지로 안 되고 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더니 마침내 어느 날 짐 싸가지고 집을 나가더군. 기가 막혔지만 가끔씩은 집에 와도 좋다고 언제든 돌아오면 받아준다고 했지, 뭐.
그랬더니 정말 가끔씩 얼굴 잊지 않을 정도로 집에 오더군. 그래도 보기만 하면 반갑고 떠나고 나면 서운해.
이런 그녀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어?
그녀가 이 글을 보면,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 “아빠마마, 고정하시오소서!”
* 주: 이 글을 썼던 2002년, 대학생이던 딸은 어느새 중견 직장인이 되었다. 일에는 철저하면서도 연휴를 손꼽아 기다리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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