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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그녀 (2002.0526)

해군52 2002. 5. 26. 22:38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녀!

 

정치적인 발언이거나 달리 사랑할 여자가 없어서가 아니고 그녀는 정말 사랑스럽지. 그녀를 만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 이거 아주 놀라운 일이지!

 

그녀는 키가 좀 작고 조금 통통하지. 얼굴은 동그란 편이지. 그래서 '달덩이'라고도 하고 '동글이'라고도 부르지. ‘해달이라고 하면 그녀가 아주 싫어하지. 그런데 사실은 동물의 세계에서 보는 해달하고 많이 닮았지.

 

피부는 아직도 희고 매끄럽지. 원단을 아주 좋은 걸 썼다더군. 좋은 원단으로 옷을 만들면 오래 입어도 좋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팔뚝이나 종아리가 좀 굵지. 내가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그녀는 싫어하지.

 

입이 작은 건지 목구멍이 작은 건지, 음식을 한 입에 많이 먹지 못하지. 이런 거 조신한 거 맞지? 젓가락질하는 폼이 좀 남다르긴 한데 그것도 개성이잖아, 그치?

 

그녀도 나처럼 영화를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나하고 극장에는 같이 안 가지만 비디오는 많이 보거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도 잘 해 주고 영화배우나 내용은 모두 꿰고 있지.

 

그런데 이상하게 알랭 들롱은 물론이고 마이클 더글러스나 리차드 기어, 이런 배우들은 싫대. 맷 데이먼이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런 배우들을 좋아하더라고. 젊은 남자들이 좋은가 봐.

 

예전에 그녀와 모임에 가면 다들 그녀에게 말붙이려고 난리가 나고, 그러면 아주 도도한 자세로 대답하고 노래 안 시켜주면 삐지고 그러더니 요즘에는 늙어서 그러는지 빼더라고. 그래도 분위기 있는 발라드든지 오빠 나만 바라봐~~~’ 뭐 이딴 노래까지 곧잘 해. 높은 음에서 좀 딸릴 때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신문 편집장을 했다던가. 글 솜씨도 아주 괜찮아. 깨알 같은 글씨로 글을 아주 잘 쓰지.

 

그녀는 나하고 전공이 같아서 의사능력이 없으니까 무효라든가, ‘범죄의 구성요건이 되는지라든가,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라든가 하는 얘기도 곧잘 하지. 그러면 다른 식구들은 무슨 소리인가 하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

 

그런데 그녀가 어느 날부터 나를 배신하고 한 젊은 남자를 사귀고 있더라구, 세상에. 처음에는 잠시겠지 하면서 그저 모른척했는데 그게 아주 오래 지속되더라구. 어쩌겠나? 나를 완전히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했지, .

 

밸도 없냐구? 나도 첨에는 그녀가 평생 내 곁에만 있을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 세상일이 억지로 안 되고 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더니 마침내 어느 날 짐 싸가지고 집을 나가더군. 기가 막혔지만 가끔씩은 집에 와도 좋다고 언제든 돌아오면 받아준다고 했지, .

 

그랬더니 정말 가끔씩 얼굴 잊지 않을 정도로 집에 오더군. 그래도 보기만 하면 반갑고 떠나고 나면 서운해.

 

이런 그녀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어?

 

그녀가 이 글을 보면,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 아빠마마, 고정하시오소서!”

 

* 주: 이 글을 썼던 2002년, 대학생이던 딸은 어느새 중견 직장인이 되었다. 일에는 철저하면서도 연휴를 손꼽아 기다리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