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펌&편집)
얼마 전 휴일에 있었던 일이다.
작은 생수병에 포카리스웨트를 담아 가지고 산에 갔었는데 그날 동행했던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 근무하는 분이 페트병 수돗물을 한 병씩 돌렸다. 수돗물 공장에서 수돗물을 직접 페트병에 담아서 서울시 수돗물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원래 먹는 거 잘 가리지 않고 물이라면 시궁창물이든 산골 계곡물이든 뭐든 다 그냥 마시니까 아무 생각 없이 잘 마셨다. 마셔보니 가게에서 파는 생수와 차이가 없었다.
그날 산행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밥을 찾다 보니 밥솥에 누룽지가 남아 있었다.
궁상스럽게 뭔 밥을 뒤져 먹냐고? 우리 집 ‘큰 나무’(=아내에게 붙여준 호칭)는 주말에도 자주 나가다니시기 때문에 굶어 죽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누룽지라면 아들과도 싸워가면서 먹는 터라, 배낭에 남아 있던 물을 붓고 끓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첫 숟갈을 입에 넣다가, @@하고 말았다.
아니 이게 웬일이지?
누룽지가 왜 달지?
설탕을 빠뜨렸나?
가만히 지난 일을 복기해 보니까...
산에서는 서울시 수돗물만 마셨고 집에 가지고 돌아온 페트병에는 아침에 담았던 포카리스웨트가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그걸 누룽지에 붓고 끓였으니 포카리 누룽지가 되었고...
아까워서 물, 아니 포카리스웨트를 따라 버리고 다시 먹기를 시도했지만, 역시 안 되고...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그 아까운 누룽지를 버리고 나니 노오란 누룽지가 자꾸 눈에 서~언하기도 하고,
얼마 더 지나면
신발 벗어서 냉장고에 넣거나 휴대폰인 줄 알고 리모콘 들고 나가거나 틀니를 빼놓고 다니거나
.
.
.
그런 날이 올 것 같아서 아주 우울하였다.
주: 이 사건으로부터 20여년이 지났지만 걱정하던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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