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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02.0522)

해군52 2002. 5. 22. 22:34

 

얼마 전 책장에서 오래된 문고판 책들을 뒤져보다가 전혜린이 번역한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와 함께 이 책을 발견했다.

 

삼중당문고 100권의 책 중에서 24, 1983. 12. 5 초판 발행, 1983. 12. 31 중판 발행, 950원!

 

완벽을 추구하면서 너무나 열심히 살다가 일찍 가버린 지나치게 똑똑한 여자’---나의 학창시절 전혜린에 대하여 가졌던 인상을 기억하면서 그 책을 다시 읽었다.

 

대학신문, 일간지, 월간잡지 등에 실렸던 글들과 편지를 모아서 편집한 그 책에는 그녀가 유학했던 독일 이야기가 가장 많았고, 부부, 친구 이야기, 딸에게 주는 육아일기, 그리고 이런저런 짧은 글들이 담겨 있었다.

 

- 영원한 물음 당신이 어디서부터 왔는가에서 도망하고 싶었고 황색 비전을 나는 좇고 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우울한 회색과 안개비와 백일몽의 연속이었다.

 

- 나는 혼자 살고 싶었다. 내 일생을 인식에 바치고 싶었다. 자유롭게......

 

-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대학까지를 관립학교만을 나왔었고 다녔었다. 또 점수따기와 책상버러지와 독서광의 부류에 속해 왔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로를 밟은 사람이면 알 수 있는 온갖 관료적 점수주의적 암기식 교육에 대해서 맹렬한 반발과 자유로운 학문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품고 있었다.

 

- 내가 중학교 때 썼던 글 속에 있는 한 구절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라는 소망 겸 졸렌이라는 정반대의 사람으로 형성되어진 것 같다.

 

- 포장마차를 타고 일생을 전전하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끔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 남편에 의한, 남편을 위한, 남편의 생을 내가 영위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결혼에 의해 불행해지지 않았을까 ?

 

- 가장 모범적 부부라고 보고 있는 부부도 이면을 보면 불만과 정신적 내지 실질적인 배신행위뿐이다. (루이제 린저)

 

요즘 같으면 흔히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냥 수긍할 말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이질적인 주장이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너무 앞서가는 사람은 살기 힘들기 마련인가?

 

* 주: 1950년대 독일 유학, 뮌헨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독문학과 조교수 부임. 헤르만 헤세 등 독일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여 데미안 열풍을 일으켰다. 향년 31세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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