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그날도 오늘처럼 햇살이 따가웠던 어느 오후 뭔가에 홀린 것처럼 땡땡이를 치고 차를 몰고 나갔다.
한강을 보면서 올림픽대로 김포방향으로 가다가 강을 건너 자유로를 달렸다.
음악을 틀고, 볼륨을 높이고... 평일 오후라서 한적한 길을 달려가니 통일동산을 지나 곧 임진각에 도착했다.
얼마 만이었나? 족히 20년은 되었으리라. 그 옛날 서대문-불광동-구파발을 지나서 멀고먼 길을 갔던 기억이 나는데 자유로를 달리니 잠깐이었다.
무슨 기념비는 그리도 많이 생겼는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하는 황진이 시비에서부터 남북통일 기원비, 무궁화 사랑하자는 비, 설운도가 부른 <지나간 30년 세월>이라는 노래비 등등
북으로 향하는 길을 막은 철조망에는 여러 사연을 적은 천 조각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땅끝마을에서부터 국토종단을 하면서>, <북에 있는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그 하나하나마다 얼마나 애절한 사연들이 숨어 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왔다.
대학생인 듯한 한 무리의 젊은 친구들이 철조망에 걸린 사연들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 철조망이 어떤 의미로 와 닿을까? 나만해도 북쪽에 가족이나 친척이 없으니 피부에 와닿는 가슴 저린 감정은 없는데 그들은 더 그렇지 않을까? 머리로는 이해하는 듯하지만 가슴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그런 거 아닐까?
외국인 몇 명이 열심히 자료를 보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고, 군인들을 태운 트럭이 한 대 지나갔다. 군인들만 아니면 여느 관광지처럼 평화스럽게 보였다.
한동안 북녘을 바라보다가 다시 남녘으로 향하면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생각해 보았다. 무엇에 끌려 갑자기 임진각까지 갔었나?
그래, 그건 서부전선 이상 없는가를 확인점검하기 위해서였어.
맞아, 그랬어!
그리고 점검 결과, 휴전선을 지키는 서부전선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음! 그러나 내 마음의 서부전선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음!
* 주: 별일도 없으면서 혼자 임진각까지 다녀왔던 어느 날의 기록이다. 5월이었는데 마치 가을날처럼 서늘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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