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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대비마마들의 트위스트 (2002.0517)

해군52 2002. 5. 17. 15:16

 

지난 일요일 저녁 묘령(?)의 여인 4인방과 식사를 함께 했는데 이들은 고교동창으로 학창시절에는 물론 결혼 후에도 아이들까지 데리고 단체로 놀러다니던 그렇고 그런 사이다.

 

그중 한 여인은 우리 집 큰 나무가 되었고, 다른 여인들도 한 남자의 부인으로 또한 자식들의 어머니로 중후한 모습의 중년들이다. (여기서 큰 나무라 함은 가족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한다고 해서 내가 아내에게 붙여준 호칭인데 정작 본인은 아주 싫어한다.)

 

부산에 살고 있는 한 친구가 서울에 올라온 김에 여인 4인방은 회포를 풀며 밤을 꼬박 새웠고, (틀림없이 남편 흉보기가 1번 주제였을 것임!) ‘큰 나무에게 충성을 다하는 나는 다음날 그 여인들에게 저녁을 쏘기로 하였다.

 

어느 한정식 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김에 악수와 허그를 하고 보니 모두들 어김없이 옛날 모습 위에 세월의 훈장을 달고 있었다.

 

식사 주문을 하는데 한 여인이 속이 좋지 않다면서 1인분은 시키지 말자고 해서 5명이 한정식 4인분을 주문했다. 속으로는 이거 여~엉 아닌데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4인분으로 5명 식사에 모자람이 없었다. 식사 후 계산할 때에도 혹시 5인분 계산하지 않는지 확인사살까지, 야무진 아줌마임에 틀림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를 포함한 옛날 얘기로 폭소가 이어지는 바람에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몸매가 화제에 오르자 한 여인 가로되,

가슴이든 배든 아무데나 나와서 만질 거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니?”

 

다른 여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배에는 꼭지가 없잖니?”

 

식사 후 노래방으로 향하는 차안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운전하는 여인이 웃어대자 뒷자리에서 하는 말이 , 눈뜨고 웃어라, 사고난다!”

 

그래서 또 웃고...

 

노래방에서 널찍한 방에 자리를 잡았는데 처음에는 아무래도 내 존재가 거북한 듯 조금씩은 빼더니 그것도 잠시뿐, 점차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렀다.

 

슬슬 율동이 시작되었고, 나는 공연무대 앞에서처럼 노래방 바닥에 앉아

무희들(?)의 노래와 춤을 감상했다. 시간은 계속 연장되었고 소올, 지루박, 블루스, 탱고, 그리고 관광버스 막춤까지 등장했다.

 

여인들의 끼가 동하자 나는 비장의 경음악을 틀었다. 기타 맨, 샹하이 트위스트, 울리불리... 이런 트위스트 곡들을 틀면서 설마 트위스트까지 출까 했는데 웬걸, 노래방 바닥이 전부 헤지는 줄 알았다^^

 

신이 난 한 여인, 신발이 바닥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으니까 신발을 벗어던지더니 양말발로 바닥을 비벼댄다. 정말 저러다가 허리 다치는 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 정도는 겨우 몸만 푼 거라고 한다.

 

, 항복이다!

 

그 여인들 모두 71학번이니까 나이로 보면 대왕대비마마 수준인데 일단 발동이 걸리니까 물불 가리는 게 없었다.

 

지나간 30년 세월동안 그 여인들이 겪었던 일들이야 안 들어도 대략 짐작할 만하다. 어려운 살림살이 꾸려가느라고 허리가 휘고, 수많은 집안일에 손마디는 굵어지고, 남편 때문에 속 썩기도 하고, 자식에게 쏟아부은 정성에 반한 허탈감도 있고, 등등등등....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나이(비밀!)...이 되었으려니!

 

지나간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트위스트 추는 소녀 시절로 돌아간 그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남아 있는 소녀끼를 어찌해야 하나, 저렇게 숨어 있는 정열을 어찌해야 하나, 심히 걱정되더이다.

 

: 20여년 전 아내의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어느 날 저녁 풍경이다. 아주 가끔씩 소식만 전해 듣는데 노래방에 다시 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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