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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없는 친구

해군52 2002. 9. 18. 22:56

그래도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하니까
누구라고 이름을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제가 아는 어느 친구 얘기입니다

88년엔가 그 친구 생전 처음으로
대한민국 부동산 등기부에 이름을 올리고
새로 개발되는 목동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그러더군요

<집이 생겨서 행복한 건 아니지만 기분은 괜찮은데>

그런데 그 친구 모종의 사고로 인해서
해가 바뀌기도 전에 그 집을 사회에 환원하고
그 반토막만한 셋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러더군요
<살다보면 집이란 거 언제 또 생기겠지>

이사하면서 살림살이를 많이 정리했는데도 집이 좁았고
아이들 남매가 어리기는 했지만
한 방을 쓰게 할 수는 없어서 고민을 했었다는데
이상하게도 어린 애들이
좁은 거실에 놓인 낡은 소파에서 서로 자겠다고
싸우기까지 했다면서 그러더군요
<그래도 저 애들이 있으니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거야>

그 친구 몇년후에 다시 집을 마련해서 몇년 살았는데
흉악한 IMF 때 또다시 집을 사회에 환원하게 되었고
지금 살고 있는 셋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러더군요
<좀 불편하게 됐지만 그나마 다행이지>

그 친구 2년만에 집을 비워주어야 하는데
그동안 집값은 장난이 아니게 올라서
하는 수 없이 이번에도 집을 줄여서 가야 하니까
살림살이를 대폭 정리해야 한다면서 그러더군요
<언제 내 집을 다시 가질 수 있을지 좀 심난하네>

그 친구 부인이 짐을 미리 정리하느라고
베란다에 있던 화분을 들어서 옮기다가
약간 디스크기가 있던 허리에 충격이 갔는지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한다면서 그러더군요
<이래저래 속이 많이 상하니까 그랬겠지>

그런데도 그 친구는
먹고 사는 문제는 별거 아니라고 무시하면서
돈 안되는 일에만 신경을 쓰면서 그러더군요
<천지를 꿈꾸고 백두산을 생각하며 사랑을 노래한다>

그 친구 이제는 먹고 사는 일에 좀 신경을 쓸만한데
너무 한심한 거 아닌가요?

그리고 그 친구 부인도 마찬가지더군요
그런 친구하고 왜 같이 사는지 의심스러워서
그 친구 짐을 싸서 문밖에 내 놓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 보았더니 정색을 하고 아니라고 하더군요

저라면 그런 남자하고는 못 살 것 같은데
뭐가 좋아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그 친구나 그 부인이나
철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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