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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에 다녀와서

해군52 2002. 10. 20. 23:06

산에 다니다 보면 여러 가지 인공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길 안내를 위한 표지판이나
샘터를 예쁘게 꾸며 놓은 것처럼
꼭 필요하고 반가운 것이 있는가 하면
자연을 만나러 산행하는 기분을 망쳐 놓는 것들도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청계산에 있는 수많은 나무 계단들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기 때문에
길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둥근 통나무 모양으로 만들어서 그래도 참아줄만하다

북한산 대남문 앞길에 놓인 철제 구름다리길은
산길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자연 경관을 망가뜨리는 괴물처럼 보여서
그 다리길이 만들어진 이후로는 될 수 있는대로
그 쪽으로 가지 않는다

오늘 가평에 있는 운악산에 다녀 왔다
운악산은 해발 936미터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과 함께
경기5악이라 불리는 수려한 산이고
암벽코스와 평탄한 등산로를 함께 지녀
산행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산이다

산 전체가 바위산이다 보니 좀 위험한 곳들이 있는데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쇠기둥, 쇠줄은 물론이고
<ㄷ>자 모양의 쇳덩어리가 수없이 박혀 있었다

이런 것들을 붙잡기도 하고 밟기도 하니
산에 오르기에는 아주 편하긴 하지만
바위에 수없이 박힌 쇳덩어리들이 영 보기 싫었다

꼭 필요한 곳에 몇 개 있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쇳덩어리 투성이가 된 바위를 보자니
바위가 피를 흘리며 고통받고 있는 것 같았다

바위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걸 잡고
편하게 다닐 수 있으니 좋다고 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산은 원래의 산 모습 그대로이어야 하고
인공이 가해지는 것은 최소한이어야 하는데
그래야 그곳을 찾는 사람들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런 것인데...

인수봉에는 자일 타는 사람들이나 올라가야지
아무나 올라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바윗길에 쇠기둥, 쇠줄, 쇠덩어리를 수없이 박아서
아무나 운동화 신고 올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

올라가기 어려운 산은 어려운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거기에 손을 대서 아무나 쉽게 오를 수 있게 만드는 건
산에 대한 모독이고 자연파괴에 불과하다

뒷동산 산책과 등산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발 산에 오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주장하면 잘난척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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