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모음

누가 죄인일까?

해군52 2002. 10. 27. 23:11

회사 업무와 관련하여 구속기소되어
구치소에서 백일 이상 고생하다가
보석으로 나온 친구를 만났다

소위 <월급쟁이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사주의 지시에 따라 한 일에 대해서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케이스에 딱 걸린 친구이다

3.3평짜리 좁은 방에 9명이 함께 있는데
한쪽 벽으로 머리를 두고 4명이 나란히 눕고
다른 한쪽 벽으로 머리를 두고 4명이 누우면
모두 8명의 발이 모이는 가운데로
비좁은 공간이 생기는데
여기가 바로 신참 자리이고
그 다음에는 변기 옆자리라고 한다

수용자 중 1명이라도 빠지면
공간이 그렇게 넓을 수가 없고
그러다가 1명이 다시 들어오면
또 엄청 좁게 느껴진단다

사형수가 들어오면 최고참 대우를 받는데
이들이 대부분 원칙을 잘 지키기 때문에
자연히 방의 질서가 잡히곤 해서
문제있는 방에 사형수를 배치하기도 한단다

처음 얼마동안은 처지가 너무도 억울해서
어떻게 하든 빨리 나가야 한다고 조바심을 했고
자기와 한 방에 있는 사람들이
전혀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했단다
<나는 억울하게 잘못 들어왔지만
저 자들은 범죄자들이니까>라고...

하지만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금강경>을 보면서
평소에 못하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도 자기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에 대해 조언도 해주고
어려운 서류를 대필해 주기도 하고
영치금을 나눠 쓰기도 하면서
아주 친해지게 되었단다

그 친구 어지간히 자기 주장이 강하고
원칙에 충실한데다 진지하기까지 해서
쉽사리 가까워지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그 안에서도 열심히 운동을 했다는데
천주교 신자이지만 절에서 하는 식으로
백팔배를 해서 크게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나 그 사람들이나 누구나 다 같애!
누구든지 아차하면 범죄자가 되는 거야>

그래, 그 말이 맞아
누가 누구를 죄인이라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절대자 앞에 서면 누가 죄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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