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연이틀동안
남산에 있는 하이야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창과 칼 여러개를 양손에 들고
와인을 곁들인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너무 잘 나가는 거 아냐?
그런데 왜 설렁탕이나 된장찌개 생각이 나는거야?
토요일 저녁 행사는 <자선무도회>였는데
서울에 주재하는 대사들이나 외국업체 대표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릴만한 내국인들이
모이는 모임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남자는 턱시도, 여자는 드레스를 떨쳐 입고
무대에서는 현악몇중주가 연주되고
사회진행은 영어로 하는
상당히 국제틱한 행사여서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세련된 분위기였지만
어찌어찌한 이유로 참석하게 되었다
기증받은 항공권을 경매방식으로 팔기도 하고
당첨자에게 선물을 준다고 경품권도 팔아서
자선기금을 마련하는데 그 자리에서
2천몇백만원이 모였다고 한다
고령인 회원들이 많았는데
부축을 받으며 걸어다니는 분들도 있었다
70~80대 회원들은 모임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다는데
만날 사람들이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니까
그런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메인이벤트인 무도회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월츠나 탱고를 추는 유럽풍의 우아한 무도회는 아니고
미국영화에서 흔히 보는 파티 풍경이었다
무대에서는 가벼운 연주가 이어지고
홀 가운데 마련된 후로어에서 춤을 추었다
외국인들은 스스럼없이 춤을 추었지만
내국인들은 좀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술이 거나하게 올라야 춤도 추고 노래도 하지
맨 정신으로는 쑥스러워서 잘 못하는 거
세련된 분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6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흰머리에 안경을 쓰고
턱시도를 입은 한 노신사가 파트너와 춤을 추는데
<차차차> 동작이 눈에 뜨이게 아주 날렵했다
몇 년전부터 이 행사 때문에 춤을 배우러 다니더니
지금은 취미활동 춤모임을 만들어서 회장이란다
말 그대로 <춤바람 난> 사람이다
불량소녀를 모시고 후로어에 나가긴 했는데
춤을 춰본지가 너무 오래 되기도 했고
더군다나 파트너는 분위기 때문에 몸이 굳었는지
초보 중에도 완전히 상초보처럼
몸따로 마음따로 제멋대로이다
왕년에 비싼 돈과 시간 들여서 배우기는 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버려두었더니 이것도 녹슬어버려서
몸이 말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녹을 닦아내고 먼지를 털면
옛날 제비 모습이 다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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