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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소녀의 생일

해군52 2002. 12. 8. 20:53

어제 생일을 맞은 우리집 가출소녀가 집에 와서
오랜만에 가족 올멤버가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저와 불량소녀, 불효소년, 가출소녀까지 넷이서요
(불량소녀는 제 집사람, 불효소년은 대학생인 아들,
가출소녀는 대학생인 딸입니다
호칭이 왜 그리 엽기적인가는 차츰 아시게 될겁니다)

식당에서 <매화수>라는 새로 나온 매실주를 시켰는데
술을 가져오면서 술잔은 두 개만 가져오더군요
사람은 넷인데 어찌 된 일인가 의아해 했더니
우리 애들 둘이 너무 어려보여서 그랬다더군요

세상에나,
대학교 3학년씩이나 된 애들이 너무 어려서
술잔을 안 준다니요?

제가 그랬지요
<얘가요, 중3이거든요!>

모두 한바탕 웃었습니다

딸애는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입니다
제 눈에 어려 보이는거야 부모 눈이니까 그렇겠지만
대학 3학년인데 중3은 아니더라도

고3 정도로 봐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리게 봐주면 좋을 거 같은데 정작 본인은 속상해 하더군요
하긴 저도 예전에는 그랬었지요

아들녀석이 동생에게 생일 선물을 주는데
봉투에 든 5천원짜리 도서상품권 열장이라더군요
그 녀석이 동생에게 선물을 순순히 줄 리가 없지요
아들녀석이 선물값 5만원을 달라고 하니까
딸애는 오빠하고 악수를 한번 하더니
내 손 잡는데 10만원이니까 5만원 더 달라고 하데요

술을 한잔씩 들어 건배를 하고나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긴장감이 감돕니다

대화하면서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부부간, 부자간, 부녀간, 모자간, 모녀간, 형제간에
예리한 공격이 개시되고 또 반격이 이어집니다
그럴때면 한치의 양보도 없고
아주 결판을 내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가도 누군가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
함께 배를 잡고 웃습니다
부모의 권위라고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오죽하면 딸애가 우리는 <코스비 가족>이라고 했을까요

제가 우스개 얘기를 몇가지 했더니
불량소녀는 웃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불효소년은 그게 뭐 우습냐고 하고
가출소녀는 오래 전부터 있던 얘기라고 하데요
애들은 오래 전부터 다 알고 있던 얘기를
부모만 모르고 있었던 거지요

우리 가족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날이
연말 전에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 애들이 장가가고 시집가면
함께 하기가 더 어렵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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