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서 이비인후과 병원을 하는 친구가
얼마전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병원-의사-식당?
연결이 잘 안 되지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저도 그랬었습니다
그 친구의 변인즉,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같이 좁은 병원에서
환자들 귀,코,목 들여다보기를 20년 가까이 하다 보니까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더라는 겁니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이면 식당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 친구와 부인은 오랫동안 고민 끝에
프랑스 식당을 운영하기로 결심을 하고
부인은 숙명여대에서 프랑스 요리과정을 수료하고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요리사와
포도주를 고르는 소몰리에 자격자를 스카웃하더니
얼마전 정말 일산 시내에 프랑스 식당을 열었습니다
어제 그 식당에서 친구들 세명을 만났습니다
부인과 함께 그 식당을 연 의사,
창원에 있다가 새로 개청한 고양법원으로 부임한 판사,
검사로 있다가 사표 던지고 나온지 6년된 변호사,
세명 모두 <~~사>짜 타이틀이 붙은 친구들입니다
낯선 프랑스 요리에, 이름 모르는 와인으로 식사를 하고
종업원을 퇴근시키고나서 밤늦게까지
즐거우면서도 긴 대화를 했습니다
그 식당 주인이자 의사인 친구는
환자에게 상당히 불친절하다고 소문이 났지만
그래도 환자가 많다고 합니다
환자가 며칠분 약을 달라, 주사를 놓아달라고 해도
때로는 주사 필요 없다고 안 놓아주고
약도 필요한 만큼만 준답니다
환자가 며칠이면 낫겠냐고 물어보면
환자가 이러저러한 것들을 지키면 빨리 낫고
아니면 오래 걸린다고 무섭게 대답한답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최선을 다해
필요한 치료를 하려고 항상 노력하지만
의료보험이나 제도가 답답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판사인 친구는 군대 제대하고나서부터
본격적인 고시공부를 해서 판사생활을 늦게 시작했는데
판사라는 직책이 현행 실정법에 따라야 하고
직접 수사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서 제약이 많지만
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더라도 악질적인 경우,
어떤 방법으로든 혼을 내 준다고 합니다
1주일에 10건쯤 판결을 하려면
그중 3건쯤은 쉽게 결론이 나지만
3건쯤은 며칠 고민을 하고
2건쯤은 선고전날 밤 늦게까지 고민을 하고
1~2건은 선고하러 들어가기 직전에야 결심을 한답니다
형사든, 민사든, 판결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하지만
정말 자신 없는 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판단이 선다고 합니다
변호사인 친구는 검사 출신인지라
며칠전 있었던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과 관련해서
검찰 조직을 아는 입장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생각과는 상당히 다른 입장이었습니다
그 조직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실력은 기본이지만
배경과 연줄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실례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조직에서 더 이상 버틸 길이 없어서
그만두고 나온 것이겠지요
변호사를 하면서 경험했던 실제 사건의 뒷 얘기를
흥미있게 들었는데 조금만 정리하면
법정비화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밖에도
판사와 검사 간의 일면 협조, 일면 갈등인 관계,
대학입시에서 이과는 무조건 의대 우선,
문과는 법대 우선하는 편향지원 문제의 심각성,
자녀들 키우는 즐거움, 때로는 서운함,
요즘 사회를 주도하는 386세대에 대한 우려,
.
.
.
<~~사>짜 붙은 전문직 종사자들 중에는
돈이나 출세만을 탐하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이런 친구들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제 친구들이라 너무 좋게만 보이는 걸까요?)
시간이 늦는줄도 모르고 있다가
12시가 가까워서야 겨우 자리를 파하고
의사는 문촌마을에
판사는 호수마을에
변호사는 여의도에 각각 데려다 주고 돌아오니
귀가 시간이 상당히 늦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어제 밤에는 저도 <~~사>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