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산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이 진동하길래
얼른 들여다보니 00700 00...이런 번호가 보입니다
웬 국제전화가...?
얼마전 부인을 잃은 엘에이의 지인에게서 온 전화입니다
전화 속 그는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흐느낌이 섞이더니
마침내 통곡이 시작되면서 말을 잇지 못합니다
먼저 간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잘 못해 준 데 대한 회한이 몰아쳐 오는가 봅니다
2달여전 엘에이에 가서 그들 부부와 만났던 일이
제게 즐거운 기억으로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그게 그녀에게 이 생에서 마지막 춤이었답니다
뭐라 위로할 수도 없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지하철 안이지만 제 눈도 어느새 촉촉해지고...
마침 내리는 눈을 맞으며 송년산행을 하는 동안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여러번 들어옵니다
부고-*** 부친상
부고-*** 모친상
주말이라 연락 안 될 것을 염려해서 그랬는지
부고는 두 건인데 메시지는 여섯번이나 옵니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등산을 하면서도
석화구이에 삼겹살에 소주로 등산 뒷풀이를 하면서도
‘이별’이란 주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휴대폰을 켜니 또 다른 문자가 와 있습니다
‘이** 심장마비로 12/18 밤 사망, 빈소......’
아니 이건 또 무슨 장난 같은 일인가 싶어서
다른 친구에게 전화로 확인해보니 사실이랍니다
나와는 대학원 동기
부인들끼리는 고교 동기
집사람에게 그 얘기를 하고 나서 얼마 지나니
집사람 고교동기회에서도 문자 메시지가 들어옵니다
대학교수이면서 현실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어느 대권후보의 일급참모를 역임하기도 했던 관계로
만나면 정치 비사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기도 했던,
정권인수팀장이 되면 나를 **부 장관 시켜주겠다던,
얼마 전에도 내 일이 어찌 되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회사 이름은 기억하지 못 해서 번번이 물어보던,
그 친구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랍니다
오늘은 마침 대학동기회 송년모임이 있는 날이고 보니
낮에는 두 군데 상가에 문상 다니고
송년모임 후 그 친구 빈소에 다녀오면
오늘 하루가 모두 지나갈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만나서 이런저런 관계를 만들어온 사람들,
초등학교 동창들부터 사랑방 회원에 이르기까지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계속 줄어갈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알고 지내고 있는 분들과
유지하고 있는 관계 하나하나가 더욱 소중해 보이고
그래서 사랑방에서 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얼마전 제가 들은 어느 분의 충고처럼
아우르고 끌어안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만남은 더 없이 즐거운 일이지만
이별은 여러번 해도 여전히 슬픈 걸 보면
이별의 아픔은 면역이 잘 안 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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