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모음

빛나는 졸업장

해군52 2006. 2. 27. 22:30

1남4녀의 막내이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어느새 10년째,
어머니 형제분과 배우자분들
그러니까 제 외삼촌, 외숙모님, 이모님, 이모부님
모두 한분 한분 돌아가신지 벌써 여러해가 지났습니다

 
며칠전 외삼촌의 큰 아들인 제 외사촌 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여름 외가에 잠시 들렸을 때에도 건강이 안 좋았는데
그후 몇 번 수술을 받으셨고
지난 연말에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지만
손을 쓸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난해 말일 병문안차 들렸을 때 정신은 온전했지만
육신의 기력은 이미 다한 듯해 보였습니다
 
그 형님은 농촌 출신으로 고향에서 한동안 직장도 다니셨지만
직장인도 아니고 농부라고 할 수도 없게 그렇게 사셨는데
살림이 어렵긴 했지만 그밖에도 뭐가 그리 못마땅했는지
형수에게는 항상 짜증으로 대하고 술을 즐겨하셨고
심지어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에도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셨는데
빈소에 앉아 있는 동안,
돌아가신 후에도 그리 생각하실까 의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하던 외가쪽 사촌들을 빈소에서 만나서
사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부러운 분은
큰 이모님의 큰 딸, 60대후반인 이종사촌 누님입니다
 
이 누님은 옛날 시골에서 흔히 그랬듯이 국민학교만 졸업했었는데
몇번인가 학력을 속였던 일이 마음에 부담으로 남았었는가 봅니다
 
아들딸 결혼시키고 손자손녀까지 본 누님은 할머니 노릇 대신
60대 만학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어렵사리 마치고
지난해 마침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누님은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집안일이나 종교생활 등 무슨 일이든
부지런하게 활동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입니다
 
또 무려 43년동안이나 봉급생활을 하시던 보증수표와 같은
70대초반의 매형은 바로 며칠전 직장에 사표를 내셨고
두분은 3월이면 아들이 있는 캐나다로 해외여행을 떠나십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밝은 표정이라 제 마음도 밝아지게 만드는
누님 내외분은 나이에 관계없이 언제나 변함없는 젊은이이고
누님이 60대 후반에 받은 고등학교 졸업장은
제가 본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졸업장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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