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死者로부터...
편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가을 편지를 씁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 어느덧 결실의 계절이 다시 왔군요
맘마미아를 보고 왔습니다
다른 관객들은 좋아서 웃는데 내 눈망울에서 흐르는 눈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가버린 청춘과 가족과 사랑과 흥겨움이 있는 공간에서 눈물을 흘리다니...‘
그 편지에서 몇 구절을 인용합니다
‘兄과의 40년 우정을 반추하면서 우리네 인생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삶의 굴곡을 바람부는대로 순응해 가면서
인내의 자세로 시련을 극복해가는 兄의 자세를 좋아하였습니다‘
‘兄과 십수년간 같이 한 산행은 참 좋은 경험들이었습니다
지리산 왕수리봉, 부용산의 고요함, 그리고 석룡산에서의 계곡물...
모든게 우리 삶에서의 편린을 말해 주는 듯 하나둘씩 의미를 되새깁니다‘
‘무모하게 물에 뛰어든 이 친구를 막아선 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물과 함께 물이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폭우로 불어난 계곡물을 무모하게 건너려던 친구를 제가 말렸습니다)
‘山을 벗들과 오랫동안 더 다니고 싶지만 이제는 그 소박한 꿈도 접습니다’
‘새벽에 별 하나가 반짝입니다
저 별 속에 우리들의 귀한 추억을 담아 놓고 가렵니다
살아 남는게 강한 것인지, 약해지더라도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인지...‘
‘좋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모두들에게 안부 전해 주면 좋겠습니다‘
편지지 넉장에 빼곡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쓰고
편지봉투에 담아 주소를 쓰고 우표까지 붙였습니다
죽기 전날 날짜로 되어 있으니 아마도 그날 밤이었을 겁니다
현장을 조사한 경찰이 가져가서 뜯어보고 돌려준 걸 어제 받았습니다
이런 편지를 여러통 남겼다는데
자살을 결심하고 편지를 쓰는 모습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처연한 심정이라 글 한줄 써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 제삼자의 입장에 설 수 있을까요?
빈소에서 편지를 받아읽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어제 입관, 오늘 벽제에서 화장하고,
성당에 위치한 새 집에 안치까지 마쳤습니다
묘하게도 제 집에서 아주 가까운 성당입니다
그 친구 누님이 제게 한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술 먹자고 붙잡지 않을테니까 가끔 찾아봐 주세요”
(그 친구가 술 더 마시자고 붙잡는데 그냥 도망간 적이 많았습니다)
갑작스럽게 친구의 삼일장을 치루고
내일부터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삼일동안 영안실, 성당, 화장장을 돌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먹고사는 일에 목을 매고
치열하게 박터지는 싸움을 시작합니다
친구를 새 집에 두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갑자기 터져나오는 눈물 때문에 바보처럼 울었고
방금 가을편지를 다시 읽으면서도 눈물을 흘렸지만
그 친구 때문에 우는 일은 오늘로 끝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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