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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추모사

해군52 2008. 11. 1. 18:02

지난 시월의 어느날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친구이자

항심회의 리더인 최영철 형이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영철 형은 저 하늘나라로 먼저 가버렸습니다

형의 해맑은 미소와 밝은 목소리가 이렇게 생생한데 말입니다

 

‘꼬마 리그’와 ‘항심회’라는 이름으로 형과 함께 했던 산행은

생활의 활력소이자 동기회의 구심점이기도 했습니다

 

연천의 고대산, 가평의 보리산, 가평의 국망봉, 영월의 구봉대산,

홍천의 가리산, 그리고 강화의 해명산...까지

 

동기회 정기산행에서 형은 언제나 기획과 연출,

그리고 산행대장까지 솔선해서 일인다역을 맡았고

사고로 다친 다리가 완쾌되지 않아 불편한 몸으로도

최적의 산을 찾기 위해 산행코스를 사전 답사하며

등산로에 리본을 다는 궂은 일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말과 휴일이면 게으름 피우려는 친구들을 불러

북한산이나 근교의 한적한 산을 찾아

숨겨진 비경 속에서 자연과 호흡하게 해 주었습니다

 

산행 중에는 홀로 앞서 가기보다

늘 뒤에 처지는 친구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곤 했습니다

 

산행 중이나 뒤풀이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형의 몫이었고

형 스스로가 술을 즐기면서도 친구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술을 줄이라고 잔소리를 하는 악역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동기회 정기산행을 준비한 사람도 바로 형이었는데

형이 준비한 동기회 정기산행이 형의 추모산행이 될 줄

그 누가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이제 형은 먼저 떠나고 우리는 형의 보이지 않는 안내를 받으며

형이 걷던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난 유월 형과 함께 이 산을 오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등산로 곳곳에 형의 발자국과 형의 땀방울이 보이는 듯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형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형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 모퉁이만 지나가면 형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저 하늘 높은 곳에 계실 그 분에게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형을 우리 곁에 돌려달라고 떼를 써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형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친구들과 산을 더 다니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생각했고 항심회의 산행이 내내 계속되기를 바랬습니다

형의 바램대로 항심회 산행은 오래오래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산길을 걸으며 형에 대한 추억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

 

이제 형을 멀리 떠나보내면서 먼 훗날 언제라도 다시 만나서

산길을 함께 걸을 수 있으리라는 바램도 가져봅니다

 

형의 가슴 속에 숨겼던 아픔도 모두 털어버리고

형의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도 다 벗어버리고

형이 그렇게도 원하던 자유로운 세상에서

마음껏 활개치며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우리 친구들 모두 두손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영철형, 부디 잘 가소서!

 

2008년 11월 1일

친구들의 마음을 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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