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따라

빨래꽃

해군52 2020. 1. 14. 11:52

빨래꽃 - 유안진

 

이 마을도 비었습니다

국도에서 지방도로 접어들어도 호젓하지 않았습니다

폐교된 분교를 지나도 빈 마을이 띄엄띄엄 추웠습니다

그러다가 빨래 널린 어느 집은 생가보다 반가웠습니다

빨랫줄에 줄 타던 옷가지들이 담 너머로 윙크했습니다

초겨울 다저녁 때에도 초봄처럼 따뜻했습니다

꽃보다 꽃다운 빨래꽃이었습니다

꽃보다 향기로운 사람냄새가 풍겼습니다

어디선가 금방 개 짖는 소리도 들린 듯했습니다

온 마을이 꽃밭이었습니다

골목길에 설핏 빨래 입은 사람들은 더욱 꽃이었습니다

사람보다 기막힌 꽃이 어디 또 있습니까

지나와 놓고도 목고개는 자꾸만 뒤로 돌아갔습니다

 

도시를 벗어나서 작은 시골 마을을 걸어가다 보면

길에서 누구든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식당이나 가게를 찾아가도 문이 닫혀 있곤 한다

아주 드물게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성은

흔히 말하는 외국에서 온 다문화가정의 부인이다

 

아주 오래 아무도 살지 않고 방치된 듯,

문짝이 떨어지고 유리창이 깨진 집도 자주 보인다

누군가 밥해먹고 잠자던 집도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흉측한 폐가처럼 변하게 마련이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을 보면

누군지도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반갑게 느껴진다

집 앞에 빨래라도 널려 있으면 카메라를 들이댄다

 

대도시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 하는 일이다

밉든 곱든 사람은 함께 살기 마련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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