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온 사진
프라하의 젖줄인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많은 다리들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 되고, 유명한 다리가 바로 카를 다리이다
원래 10세기 초부터 있었던 목조다리를 12세기에 석조로 개축했지만
그후 홍수로 유실되었고, 1357년에 다시 착공, 1402년에 완성되었는데
견고하게 하기 위해 우유와 계란, 와인 등을 회반죽에 섞었다고 한다
평민들이 주로 거주하던 프라하 구시가지 쪽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체코 강 지역과 유럽에서 몰려든 물품들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왕궁과 성비트스 대성당이 있는 프라하성 쪽에는 왕족과 귀족들이
많이 거주했었는데, 이 다리가 다른 성격의 두 지역을 연결함으로써
프라하라는 하나의 도시를 완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다리 진입부에 있는 중세시대 고딕양식의 탑에서 다리 쪽을 보면
수많은 인파가 흘러넘치는 다리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원래 이 다리의 완공 이후 200년동안 장식물이라고는
나무로 만든 ‘17세기 예수 수난 십자가’ 하나뿐이었는데
로마 산탄젤로 성에 있는 베르니니의 조각에서 힌트를 얻어
1683년부터 약 250년에 걸쳐 체코의 최고 조각가들이 제작한
천주교 성자 33인의 조각상을 카를 다리 위에 세웠다고 한다
14세기말 주교이던 네포묵 신부는 왕비의 고백성사 내용을 밝히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한 죄로 이 다리 위에서 강물로 던져졌다는데
1683년 바로 그 자리에 네포묵의 조각상이 제일 먼저 세워졌다
네포묵의 조각상 아래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왕비의 고백성사 장면과 네포묵의 죽음 장면을 그린 동판이 있다
네포묵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엉뚱하게도 왕비를 만지는 사람들도 많은가 보다
다리 좌우에는 고딕 및 바로크양식의 성자상이 줄지어 서 있어서
(비록 진품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모조품이기는 하지만)
마치 야외 조각 전시장에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전용인 길이 520미터의 카를 다리는
기념품 상인들, 거리의 악사들과 관광객으로 언제나 붐빈다 (↓)
밤늦게까지도 이런 종류의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이 장면도 바로 이 다리 위이다
다리 아래 유람선 표시 앞에서 해군 병사 차림으로 서성이는
사람들은 유람선을 타려는 것이 아니라 유람선 표를 팔고 있다
원래 이 다리가 세워질 당시의 이름은 ‘프라하 다리’였는데
1357년 다리의 건축을 지시하였고 체코 문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카를4세의 이름을 따서 1870년부터 '카를 다리'로 바뀌었고
1848년 카를대 설립 500주년을 기념하여 구시가지쪽으로 통하는
다리 입구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 퍼온 사진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며 30개 성자상의 호위를 받는 카를 다리와
그 건너 프라하 성의 모습 특히 야경은 프라하 관광의 백미이다
여행기에 쓸 사진이 적당치 않아서 빌려올 수밖에 없는 걸 보니
마지막 도시에 오기까지 사진 찍기에 어지간히 지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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