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세상

8월의 크리스마스 (55)

해군52 2006. 3. 7. 00:12

 

제작년도 1998

제작국가 한국

상영시간 97

감독 허진호

출연 한석규, 심은하, 신구

 

불치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사진사와 여성 주차 단속원의

짧아서 더 안타까운 사랑을 그린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으로

세련된 화법과 형식미로 멜로의 격을 높였다는 찬사를 받고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한 보기 드문 멜로드라마입니다

 

가수 고 김광석의 빈소에서 영정을 보며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허 감독은 죽음을 앞두고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주인공을 따뜻한 시선으로 티없이 맑은 수채화처럼 그려내어

아름다운 삶과 죽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수작을 만들었습니다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운 연출 솜씨를 보여준 허진호 감독,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기를 펼친 한석규와 심은하 두 톱스타,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된 유영길 촬영감독이 조화를 이루며

세련된 슬픔과 절제의 미학을 만들어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곡소리를 내지 않고도 슬픔을 퍼올리는 재능이 있다'라거나

'상업영화에도 작가 정신이 깃들 수 있다'는 호평을 받았고,

'죽음에 대한 동양적 사고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서울 개봉시 44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서도 성공하여

<접속><편지>에 이어 멜로드라마의 부활을 이어갔습니다

 

청룡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하여 모두 4개 부문과

백상예술대상을 비롯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일본에서도 큰 호응을 얻으면서 리메이크되기까지 하였으며

2013년 관객들의 다시 보고 싶은 명작’ 1위에 올랐습니다

 

 

아버지(신구 분)로부터 물려받은 서울 변두리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한석규 분)은 아직 30대 젊은 나이이지만

불치병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다

 

어느 날부터 사진관 부근에서 주차 단속원으로 일하는 다림

(심은하 분)이 매일 비슷한 시간에 사진관 앞을 지나다니며

단속한 차량의 사진 인화를 맡기는데 매일 찾아오는 다림의

존재는 점차 하루하루 죽어만 가던 정원의 일상이 되곤 한다

 

초여름 풋과일처럼 생기 넘치고 당돌한 20대 초반의 다림은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정원의 가슴에 파문을 만들고,

이제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에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원은 어느새 다림이 사진관에 오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정원은 어느 날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실려가지만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고 사진관 문 앞을 서성이던 다림은

편지를 써서 사진관의 닫힌 문틈으로 억지로 우겨넣고 간다

 

집으로 돌아온 정원은 다림의 편지를 보며 눈물을 떨구지만

다른 곳으로 전출간 다림은 한동안 사진관에 나타나지 않고,

기다리던 정원은 다림이 근무하는 현장을 찾아가서 바쁘게

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만 하다 돌아온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은 정원은

세상을 떠나고, 다림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사진관을 찾아와도

사진관에는 '출장 중'이라는 팻말만 걸린 채 문이 닫혀 있다

 

사진관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다림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다

돌아서는데 정원의 죽음을 모르는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미소 지으며 떠나는 다림의 뒤로 보이는 사진관 진열장에는

밝게 웃음 짓는 그녀의 흑백 사진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가업으로 물려받은 허름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사 청년과

카메라가 싸구려라 무시당한다고 투덜대는 여성 주차단속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풋풋하고 아무런 꾸밈이 없습니다

 

이렇다 내세울 것도 없고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인생이 사진처럼 결국 추억만 남긴다는 것을 터득한 청년은

이런 확신으로 죽음을 앞두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인생을 정리하고

다가올 죽음을 힘들이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들으며 마루에서 발톱을 깎는 장면,

자신이 떠난 후 아버지를 위해 리모컨 작동법을 쓰는 장면,

그녀를 우산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어느 비오는 날의 장면,

크리스마스이브에 그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사진관에 걸린

사진을 보고 뒤돌아서며 미소 짓는 그녀의 마지막 장면...

 

허 감독은 슬픈 이야기임에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장면들이

넘치는 작품을 만들었고,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며

죽음으로 가는 고통보다 삶의 긍정적 의미들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이렇다 할 클라이맥스나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이

그저 흔한 일상을 낮은 톤으로 섬세하게 묘사해 나가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아련히 저리도록 여운을 남기는 수작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떠나는 남자는 이런 편지를 씁니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비록 연인이나 부부가 못 되고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아도

가슴에 담은 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겠지요?

 

 

영화 예고편 보기!

 

[8월의 크리스마스 ㅣ Christmas in August] 메인 예고편 - YouTube

 

허진호 감독의 다른 작품들

 

 

봄날은 간다 (2001)

행복 (2007)

호우시절 (2009)

덕혜옹주 (2016)

천문 : 하늘에 묻는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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