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

운명의 디지탈 카메라 (백두산 여행기-3/2002.0826)

해군52 2002. 8. 26. 08:34

아나로그와 디지탈의 원리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지만

아나로그보다는 디지털의 기능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

 

휴대폰이 디지털로 바뀐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레코드도 LP판이나 카세트테잎에서 CD로

비디오테잎도 점차 DVD로 바뀌고 있고

녹음기도 카메라도 이제는 디지털로 가고 있다

 

디지털 녹음기는 조그만 것이 테잎도 없이

열몇시간씩이나 녹음할 수 있다는 게 편리하고 신기했다

 

디지털 카메라 역시 필름없이 편리하게 사진을 찍어서

컴으로 보거나 보관하거나 인터넷으로 주고 받을 수 있어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는 것 같다

 

사랑방에 백두산 여행기를 쓴다면

백두산, 천지, 들꽃 사진들을 함께 올려야 하겠기에

출국 며칠전에 적금 털어서 비싼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했다

세트에 들어있는 메모리칩은 용량이 너무 작아서(8메가)

64메가짜리 메모리칩과 충전기세트도 새로 샀다

 

사용법을 몰랐으니 설명서를 보면서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어디 한번 가려면 해야 할 일들이 왜 그리 많고

마음은 왜 그리 바쁜지...

사용해 보지도 못한채 부속품과 설명서를 챙겨서 떠났는데

여기서 운명이 갈릴 줄이야!

 

출국하는 비행기에서 자리를 잡고 나서야

설명서를 보면서 카메라를 더듬적거리는데

64메가 짜리 메모리칩을 넣고 작동을 시키니까

<메모리칩 불량>이라는 메시지가 나오는 게 아닌가!

뭘 잘못 했는가 싶어서 8메가 칩을 넣었더니 정상이었다

(64메가 칩이 불량이라면 이거 앙꼬없는 찐빵 아녀?)

 

참 막막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북경이나 상해라면 모를까 장춘이나 연길에

디지털 카메라가 있을 리가 없을테고

다시 돌아갔다 올 수도 없고

애꿎은 카메라만 이리저리 돌려볼 수밖에...

 

금강계곡을 트레킹하면서 8메가 칩을 넣고 몇장 찍어보니

잘 찍히긴 하는데 금새 가득차 버렸다

수많은 꽃, 나무, 나비, 새, 산봉우리, 하늘, 구름....

저 아름다운 장면들을 어떻게 담아갈 수 있을까?

아, 이런 멍청한 일이라니!

사전 점검하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지만

아무리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행중 몇 명이 디지털 카메라에 사진을 담고 있어서

혹시나 하고 그중 한명에게 물어 보았더니

여분의 메모리칩이 있기는 하지만

규격이 카메라마다 달라서 빌려 쓸 수도 없었다

 

백두산 들꽃들을 사랑방에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누구의 시샘인지 포기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어 보였다

 

트레킹하던 날 그리고 백두산 외륜봉을 종주하던 날

나의 디지털 카메라는 무용지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온갖 장면을 담고 있는 것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친구가 가져간 아나로그 카메라의 모델노릇만 했다

 

그날밤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한 일이었다

그래서 소니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 사람에게

사연을 얘기하고 협조를 요청했더니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CD에 담아서 주겠다고 했다

 

오, 마이 구세주!

사진 문제는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이렇게 해결 방안을 겨우 찾은 셈이다

 

귀국한 후 카메라점에 들렸더니 새것으로 바꿔주면서

자기 잘못이라며 백배사죄를 하니 화를 낼수도 없었다

메모리칩은 불량이 거의 없는데

백만분의 일 확률에 걸렸다나 어쨌다나

그 정도 확률이라면 복권이나 당첨될 일이지...

 

사진없는 여행기를 우선 연재하고

사진은 추후 보완하기로 한 사연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