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 03:15 버스에 올라 백두산으로 향한다
하늘에 총총한 별이 보이고 날씨가 쾌청하다
밤공기가 시원하다 못해 차갑다
잠시 부족한 잠을 보충하다보니 어느새 산행기점에 도착한다
04:40 제자하(梯子河)에서 하차하여
천지로 향하는 찬치퍼(喘氣坡-깔딱고개)를 오른다
찌를 듯이 솟아있는 침엽수들 사이로
아무런 예고도 없는 오르막길이다
어둠 속에 백운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오랜만에 해 보는 본격 산행이라 긴장된다
양쪽 무릎에 보호대를 착용하긴 했지만
13시간 산행을 견뎌낼지 걱정이다
<보폭은 작게, 속도는 느리게!>
마음 속으로 수없이 강조한다
05:00 1차능선에 올라서니 나무는 없고 풀만 무성하다
여기서부터 백운봉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05:20 2차능선에 올라서니 시야가 확 트인다
이제 백운봉과 거의 같은 높이까지 올랐다
05:25 봉우리 옆으로 붉은 해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높이 올라갈수록 꽃의 높이가 낮아진다
알프스 초원처럼 넓은 들판에 쑥부쟁이와 산용담이 지천이다
06:00 老虎背(늙은 호랑이 허리처럼 생긴) 능선에서 사진을 찍는다
저편으로 보이는 포장도로로 찦차를 타고 가서
1,300 계단을 오르면 천지에 닿는다고 한다
해발 2,115미터에 보이는 능선이 나비능선이다
나비라?
그 능선에 나비가 많아서라고 한다
주위를 돌아보면서 이 능선 자락에 골프장이나
유원지를 만들면 좋겠다고 한마디씩 한다
나는 그런 거 바라지도 않고 그저
오고 싶을 때 올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너무 욕심이 없는걸까, 아니면 더 많을걸까?
<백두산 들쭉술>로 유명한 들쭉이 사방에 널려 있다
06:30 도로 끝지점에 멀리 보이던 계단 바로 옆까지 근접한다
계단입구에 주차장과 매점을 만드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서도 돈을 벌어야 하겠지만 그만큼 자연경관은 망쳐지고 있다
널려 있는 돌들을 보면서 남이장군의 호방한 시를 생각한다
<칼을 갈아서 다 닳았다>던 백두산 돌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말이 마셔서 다 없어졌다>던 두만강 물은 어찌 됐으려나?
남이 장군은 <남아 20세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불러줄까>라고 했는데
남아 50에야 겨우 백두산을 오르는 나는 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발한발 오르다 보니
07:00 드디어 천지의 모습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그렇게도 그리던 천지는 밝은 햇살 아래
아무 것도 숨기지 않은 웅장한 모습이었다
우리의 개국신화로부터 수천년 역사를 안고 있는 천지는
장군봉을 비롯한 16개 고봉들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그곳에 그렇게 있었다
천지에 비추이는 산, 구름, 하늘이 너무도 황홀하다
백두산 주봉들도, 하얀 구름도, 푸른 하늘도
모두 천지 속에 거꾸로 박혀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한동안 바라만 보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슬픔이 솟아오른다
나는 왜 아름다운 걸 보면 슬퍼질까?
날씨가 너무 환상적이라 중계방송이라도 하고 싶다
모두들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광각렌즈카메라로 찍어야 천지 배경이 다 나온다고 해서
몇 명씩 어울려 현지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고 필름을 받는다
07:25 비디오 촬영 전문가이기도 한 가이드 최부장이
우리를 모델로 천지 화면을 잡기에 정신이 없다
나는 천지를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이런 멘트를 한다
<2002년 8월 16일 백두산 천지에 섰습니다
대한민국 동포여러분, 대한민국 화이팅입니다
서울에 있는 우리 가족들, 친구들, 회사직원들 그리고 애인들,
대한민국 화이팅입니다 화이팅!>
나무로 만든 표지에는 <백두산 천지>, <長白山 天池>라고 씌여있고
화강암으로 된 표지석에는 한쪽에 파란 글씨로 <조선5>,
다른 한쪽에 붉은 글씨로 <中國5>라 씌여 있다
바로 북한과 중국의 국경임을 알리는 <5호 경계비>다
건너편 북한 쪽에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이 보인다
천지는 화산폭발과 함락에 의하여 이루어진 칼데라호이다
수면의 해발 고도는 2,189m로 전세계 화산호 중 가장 높다
동서 길이는 3.51km, 남북 길이는 4.5km, 면적 9.17km2,
둘레 14.4km, 최대너비 3.6km, 평균 깊이 213.3m,
최대 깊이 384m, 수면 고도는 2,257m이다
해발 2,500m이상인 16개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천지를 정신없이 바라보면서 아침 식사를 하고
08:15 외륜봉 종주를 하기 위해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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