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능선 거친 바람 속에서 꿈을 꾼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리고
이 산에 오기까지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흘러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깨어보니 어느새 찾아온 여명...
누군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바위가 된다
아주 오랜 세월 이 자리에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것처럼...
태양의 힘으로 또 하나의 하루가 열리고
산도 바위도 꽃들도 모두 다시 살아난다
거친 바람 속에 밤이슬을 피해 꿈을 꾸던 자리도
마치 꿈인 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생생우동 한 젓가락, 그래도 이것만은 현실인가?
운무에 둘러싸인 산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데
레키 스틱들도 출발 준비를 하고
우리 모두 출발 준비를 한다 (07:09)
곧 해발 1420.8 미터 국망봉을 지난다 (07:23)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천년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대찰을 찾아 머물렀고
왕자인 마의태자는 신라를 회복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엄동설한에도 베옷 한 벌만을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으로 들어와 이곳에서 멀리 옛 도읍인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연유로 國望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길은 주로 참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계속 이어지는데
크게 전망이 트인 곳이 없어 단조롭고 지루한데다가 길도 좁아서
무박 산행을 온 많은 등산객들과 뒤섞여 가느라 피곤한 산행이다
그래도 늦은맥이재-상월봉-마당치를 거쳐
이번 산행의 종점인 고치령에 무사히 도착한다 (12:24)
고치령 등산로 입구 건너편에는 작은 산신각이 있고
길 양편으로 포도대장군을 비롯한 장승들이 서 있는데
그중 太白天將의 아래쪽 모습이 특이하다
太白天將의 '將'이라는 글자 위쪽에 이런 물건을 붙여놓았는데
한 중년여성이 ‘이쪽에서 보면 정말 똑같다’고 할 정도이다
팬티라도 입힐 것이지, 백주대로에서 장군 체면이 말이 아니다^^
우리 차를 만나서 맥주 한캔씩으로 갈증을 풀고
조용한 계곡 물에 잠시 땀을 털어낸 다음
소수서원을 지나 유명하다는 순흥 묵밥집을 찾는데
큰길에서 가깝게 깨끗하게 보이는 식당은 가리지날,
뒷길에 허름하게 있는 식당이 오리지날이라고 한다
뒷골목까지 일부러 찾아간 오리지날 순흥전통묵집의 메뉴는
4천원짜리 전통묵밥 단 한가지뿐이다
묵위에 육수를 붓고 그 위에 갖은 양념을 얹으니
보기만큼 맛도 좋고 웰빙식품으로도 손색이 없고
거기에 검은콩 막걸리까지 곁들이니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산행 후의 피곤함과 막걸리 몇잔이 나를 잠에 빠지게 했으니
이후 차에서 이어진 술판은 아무런 기억이 없고
서울에 도착한 다음 생맥주 한잔씩에 이어진 또 다른 자리는
참석하지 않아서 역시 알 수가 없다
이번 산행도 어김없이 산행보다 하산 후 뒤풀이가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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