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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장보고 장군 (2002.0417)

해군52 2002. 4. 17. 15:06

장보고 장군이 누군가?

그 옛날 통일신라시대 남해바다 청해진에 자리를 잡고 한중일 3국의 바다를 호령하던 분, 충무공보다 훨씬 먼저 해군의 원조라 할 만한 분이다. 그런 분하고 친구라니 무슨 소리인가? 또 꿈 얘기를 하고 있나?   

 

내 친구 중 한 녀석 별명이 장보고 장군이다. 그 녀석은 중학교 때 농구, 고등학교 때 육상과 씨름, 대학교 때 미식축구를 했고, 공부하고는 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하였지만, 술과는 가깝다 못해 한날 한시도 떨어져서는 못 사는그런 넘이다.  새벽까지 술마시고 집에 가다가 개천에 빠져서 익사 직전이었다든가, 동네 깡패들한테 뒤통수가 깨졌다든가, 납치하려 하는 괴한들과 결투하다가 칼로 목을 찔렸다든가 하는 무용담이 부지기수로 많다. 

 

게다가 이런 일도 있었다. 작년 동아마라톤 바로 전날이었는데 마라톤 전날이라고 술을 안 마실 위인이 아닌지라 술을 잔뜩 마시고는 호프집 계단에서 굴렀더란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옆구리가 아프더란다. 계단에서 구르면서 부딪쳐서 그렇거니 하고 파스만 바르고 마라톤 풀코스를 다 뛰었는데 계속 아프기에 할 수 없이 병원에 갔더니 갈비뼈가 부러졌더란다. 

 

그런데 이런 짐승같은 녀석이 야무진 캐리어우먼인 부인 앞에만 서면 설설 긴다. 하긴 뭐 지은 죄는 많고 잘한 짓은 없으니 그렇긴 하겠지만. 그러다 보니 몇가지 집안 일도 그 녀석이 도맡아서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시장 보는 일이다. 부인이 품목을 적어 놓으면 마켓에 가서 사오는 건 그 녀석 일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친구가그 녀석에게 장보고 장군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시장 보다-->장 보다-->장 보고-->장보고 장군, 이렇게 된 거다. 장보고 장군, 또는 장장군 이렇게 부르면 상당히 멋있어 보이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다. 

 

요즘 마켓에서 부부가 함께 시장 보는 일은 너무나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도 가끔씩 그러는데, 카트를 밀고 가다 보면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웃곤 한다.  80년대 초반 내가 처음으로 미국이란 나라에 가서 LA 한인마켓에 갔었는데 두가지가 기억에 남아있다.

 

우선 하나는 가게 규모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자들이 카트를 끌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그 때 미국 가서 산다면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뭔가 멋있어 보이고 부러운 대상이었는데 정작 와서 보니까 한다는 짓이 마누라 모시고 마켓에서 카트나 끌고 다니니 저럴려고 미국까지 왔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나부터 그러고 다니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그럴꺼다. 그만큼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이 바뀌었고 우리네 사고방식도 바뀌었다. 집에서 친구들 모임을 하고 난 뒤 설거지하는 건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게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부엌은 남자들이 절대 갈 수 없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  우리집 딸애는 밥을 먹을 줄만 아는데 아들놈은 밥을 기가 막히게 잘 한다. 그 애들이 가정을 이루고 살 때가 되면 아마도 남녀의 역할이 지금과는 또 많이 다르게 될 것이다.

 

옛날에 그랬던대로 남자는 부엌에 가서도 안되고 시장은 여자가 봐오고 등등 그런 생각을 한다면 골.  동.  품.  취급을 당하게 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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