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모음

남포동 거리에서

해군52 2002. 12. 28. 21:01

며칠전 아침 일찍 부산 남포동 거리를 걸었습니다
부산영화제의 흔적이 거리 곳곳에 보였습니다
미국 헐리웃 거리에 있는 것처럼
유명 감독이나 배우들의 손을 찍어놓은 동판도 보았습니다

자갈치 시장 쪽으로 건너가려고 횡단보도 신호등에 서 있다가
묘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넥타이를 매고 코트를 입은 서른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담배를 피우다가 불도 끄지 않은채 꽁초를 길에 버렸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작업복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역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50대 아저씨가
아무말없이 다가가더니 그 담배 꽁초를 줏어서 불을 끄고는
몇걸음 떨어져 있는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젊은 친구는 겸연쩍어하면서 그 아저씨에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심코 실수를 했습니다>
 
아저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냐, 나도 가끔 그러는데 청소하는 사람은 참 힘들겠더라구>

두 사람 모두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제 서로 얼굴을 보았으니까 다음번에 만나면
차라도 한잔 할 수 있는 거 아냐? 이게 다 인연이지>

그리고는 녹색신호에 모두 길을 건너서 헤어졌습니다

마치 저를 향한 가르침인 듯했습니다!!!!!

상대방의 실수를 지적하면서도 상대가 민망하지 않게 배려를 하는
조금 남루한 복장의 그 아저씨는 참 대단한 분이고
낯선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실수를 지적받고서
선뜻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젊은 친구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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