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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관계

해군52 2003. 4. 30. 21:29

J에 입사한지 무려 7년이라, 직장을 바꾸지 않으면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듣는게 아닌가 싶어 고민끝에
지난해 12. 12를 기하여 自意 90%, 他意 10%로 J를 떠났습니다.
이로써 J그룹 7년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흰손(白手)이라는 임시직에 몸담게 되면서
한 회사에 오래 다녀서 능력이 없다는 평가는 겨우 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난 다음
친구들, 직장에 함께 있던 분들, 기타 지인들에게
백수되었음을 알렸던 편지에 썼던 내용입니다

백수 알림 편지, 이런 거 들어보셨습니까?

<7년이 되어도 직장을 바꾸지 않으면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들을까 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말로 눙치기는 했지만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백수되기까지에는
저대로의 아픈 사연도 있었습니다

여하튼 영화 <철도원>의 주인공 오토처럼
한번 선택한 직장에서 평생을 바쳐 일하고
후배들의 축하 속에 정년퇴직하는 것이
우리 세대가 생각했던 멋진 직장인의 모델이었습니다

직장을 옮기는 일이 아주 드물었던 그 시절에는
여러 직장을 다닌 경력은 결정적인 감점 요인이었고
직원을 뽑을 때 3개 이상 직장을 다닌 경력이 있으면
신뢰성이나 조직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보이기 때문에
보통은 그대로 탈락이었습니다

얼마전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이 일을 담당할 실무책임자를 뽑은 적이 있었는데
최종 내정자의 이력서를 보니까 회사 6곳을 다녔습니다
그 옛날에 그렇게 썼다면 보지도 않고 탈락이었겠지만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인지라
여러 곳에 근무한 것이 오히려 능력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 사람과 근무조건을 정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인 애로사항도 들어주기로 하고
우선 실행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고
업무에 필요한 전도금도 지급하고 기타 등등...

그런데 며칠 지난 어제 만났더니 그만 두겠다고 합니다
먼저 일하기로 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꾸 오라고 해서 가야겠다고...

그 사람 65년생이니까 38살인가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알았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복수의 대안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우리쪽을 지렛대 삼아서 저쪽에다
더 좋은 조건을 요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기분 정말 꿀꿀하다고 하는 거 맞지요?

새로운 사람을 찾아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리고
그만큼 새로 시작하려던 일이 늦어지겠지요
그래도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이런 관계라면
서로의 기대가 맞지 않을 때 대응도 비교적 단순합니다

하지만 친구 사이, 가족 사이, 연인 사이처럼
계산할 수 없는 관계에서는 상당히 복잡해집니다

가까운 사이가 되면 될수록 더 많은 것을 주지만
그만큼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도 더 많아지고
작은 일에도 어긋나고 상처받기 더 쉽고
때로는 너무 큰 기대가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한쪽은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도
다른 한쪽은 만족하지 못해서 더 큰 것을 바라고...
그러다 보면 결국 그 관계는 깨지고 말게 됩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에 대한 사랑도 조금만 하고
기대도 조금만 하는 게 옳은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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