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찾아오자 입고 있던 옷들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빨리 가벼운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할텐데
그 옷들은 지난 가을 끝자락에 퇴장당한 그때부터 계속
도망 보따리처럼 집 한 구석에 쌓여만 있습니다
우리집 불량소녀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처분만 바라고 있었는데
일주일쯤 전에 그 옷보따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연인즉, 지난 여름옷들을 그냥 보따리로 싸놓았다가
입어야 할 때가 되니까 이제 세탁을 맡긴 겁니다
철 지난 옷들을 세탁해서 정리하려면 너무 복잡하다는 거지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합니다
여하튼 오늘 아침 옷을 찾아오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물표 두장을 들고 할인점 지하에 있는 세탁소에 갔더니
복잡하기는 얼마나 복잡하던지요
한참 줄을 섰다가 물표를 내 주고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렸더니
옷 내 주는 아주머니가 옷을 한 아름 가지고 나와서
물표에 적힌 번호와 옷에 붙은 번호를 대조하다가
다시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를 서너차례나 합니다
겨우겨우 번호는 다 맞춘 것 같은데
비닐로 씌워진 옷들을 보니 아무래도 낯이 설기만 합니다
게다가 제가 입던 옷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불량소녀에게 전화를 때려 물어봅니다
“내 옷은 하나도 없는데 따로 맡긴거야?”
“뭔 소리? 전부 당신 옷인데...”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네!--이런 말은 안 들렸습니다^^)
아주머니를 다시 불러 물표와 대조해 보니 전부 다른 번호입니다
8-120번인데 9-120번 식으로 전부 다른 옷들을 가져 온 겁니다
집에까지 가져갔더라면 쇼가 벌어질 뻔했습니다
한참만에 다시 찾아내 온 옷들을 보니
모두 저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낯익은 옷들입니다
집에 와서 겨울옷이 있던 자리에 찾아온 옷들을 걸었습니다
이제 퇴장 당한 겨울옷들은 또 보따리로 쌓인채 여름을 나고
가을 끝자락에나 세탁소로 가게 될 겁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가겠지요~~
내일부터 봄옷을 입으면 봄기운을 더 느낄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