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다녀와서 저희집 주니어가 있던 방을 들여다보니
주인 없는 방에 박스 한 개가 덩그마니 놓여 있습니다
지난 3월 공군장교 훈련에 들어간 주니어로부터 온 박스입니다
훈련소에서 관급품을 지급받고 사물을 담아 보낸 것인데
집사람이 혼자 뜯어보지 못하고 그냥 두었나 봅니다
엄마의 마음이려니~~
입고 갔던 옷가지들이 들어있을텐데 곰팡이 난 거나 아닐지?
즉시 해부해보니 츄리닝, 내의, 양말, 운동화, 화장지, 로션...
이런 것들하고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일주일 됐는데 밥 잘 먹고 훈련 잘 받고 있다,
(주는 밥 못 먹으면 훈련도 아니지)
밥을 많이 먹어서 다이어트 계획에 차질이 생기겠다,
(아직 힘든 과정이 없어서 그렇겠지)
바느질도 늘고 세탁도 잘 한다,
(그거야 당연한 얘기지)
혹시라도 울지 말고 8주 후에 만나자,
(그런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된다)
답장에 물건 넣으면 다 뺏긴다...
(다 알고 있으니까 절대 안 보낸다)
이러저러한 내용이 있었고 (괄호 안은 제 혼자만의 대답임)
마지막 줄에 조금 큰(!) 글씨로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수건 밑 편지 좀 보내주세요>
누구한테 보내는 편지인지야 안 봐도 뻔한 일이고
집에 온지 꽤 여러 날이 지났는데
편지 기다리며 애태울 사람을 생각하니 제 마음도 급해집니다
집사람을 시켜 주인공에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니
케익까지 사들고 총알처럼 달려와서 받아갑니다
그 시절 하루라도 못 만나면 백년쯤 되는 거 같을텐데
그래서 청춘은 아름다운 거겠지요?
그 다음에 온 주니어의 다른 편지 내용은 좀 웃깁니다
거울을 보면 시커먼 군인 아저씨가 서 있다,
건빵이 맛있고 라면이 먹고 싶고,
쵸코파이를 위해 열심히 종교 참석한다,
어제밤 꿈에서도 엄마하고 싸웠다,
싸울 사람이 없어서 엄마 혈압 떨어졌겠다...
주니어 편지 이외에도 부대장과 소대장으로부터 훈련에 관한 안내문
그리고 훈련복 차림의 주니어 사진 한 장까지 동봉되어 왔습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군에서 너무 이런 데 신경 많이 쓰는 거 아닌지
오히려 걱정될 정도입니다
안내문에 있는대로 교육사령부 인터넷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훈련 전과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모두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런 건 보안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건지...
홈페이지에서 주니어 이름으로 검색을 하니
전투기 앞에서 거수경례하는 사진이 올라옵니다
주먹쥔 왼손이 어색하고 발뒷꿈치와 무릎이 벌어지는 등
아직은 엉성하기는 하지만 첫 모습치고는 괜찮은 것 같은데
훈련 3주차 사관후보생 모습이 어떻습니까?
그런데 5월중순에는 2박3일 외박도 있다고 하니
뭔 장교 훈련이 이리 느슨한지 걱정입니다
해군 같으면 어림도 없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