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모음

이지수 콘서트

해군52 2005. 5. 3. 22:00

어제 저녁 우리 부부는 딸애 덕분으로 콘서트에 가게 되었습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서 만나서 기분좋게 저녁을 먹고
낯익은 신문로 거리를 지나 경희궁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구세군빌딩 옆에 언제 지은 건지는 모르지만 처음 들어가본 금호아트홀
1층 로비에는 개방식 서가에 상당량의 책이 꽂혀 있고 (직원용?)
2층에는 음악홀과 미술관이 있습니다
금호그룹 박회장이 예술에 관심이 많다고 하던가요?

딸애는 접수대에 가서 표 두장을 받아서 자리까지 확인을 하더니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라면서 활짝 웃는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서울음대 4학년에 재학중인 재능있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이지수의 콘서트를 보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딸애가 표를 구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딸애가 즐겨듣는 MBC FM 라디오에
‘이소라의 음악도시’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서 표 두장을 받았다더군요

어떤 사연을 보냈길래 표를 받아냈을까 궁금했는데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보니 바로 이런 거였습니다


4월 25일이 부모님 결혼 기념일이에요.
벌써 28주년.

올해 3월엔 하나 있는 오빠가 느지막히 군입대를 했어요.
아직 훈련중이라서 편지만 몇통 와있네요.

첫 월급은 커녕 버젓한 직업도 없는 스물다섯 먹은 딸인 저.
오빠가 없으니까 부모님께 오빠 몫까지 해드리고 싶은데,
딱히 저 혼자 힘으로 해드릴 수 있는게 없네요.

남들은 은수저라도 한벌 해드린다는 25주년도 그냥 보내고,
음도의 힘을 빌어 뒤늦게나마 좋은 공연 선물 해드리고 싶어요.

초대받게 된다면,
그날 부모님 모시고 가서 티켓 드리려구요.
두분이 행복한 데이트 하시도록.



아직도 입에서는 젖냄새가 날 것 같은 얼굴을 한 딸애가,
젊음도 모두 보류한채 도서관에 파묻혀 있는 고시생이
놀랍게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철없는 부모에 철있는 자식들,
속썩이는 부모를 걱정하는 아이들,
참 뭔가 많이 잘못된 집안입니다

저,
딸애의 사연을 보고도 목이 메이거나
눈물을 글썽이거나 절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건 진짜진짜 정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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