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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진 양말

해군52 2007. 5. 15. 21:06

오늘 아침 6시,

시끄러운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을 부비고 겨우 일어납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거래처 공장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아침에 그쪽으로 바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6시면

이미 일어나서 운동하거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분도 많겠지만

늦잠 체질인 나에게 그 시간은 꼭두새벽처럼 이른 시각입니다

 

내 회사 출근이라면 좀 늦어도 상관없겠지만

내 목줄을 쥐고 있는 거래처 행사이니 늦어서는 안 될 일,

출근 시간인데 어느 길로 가야 길이 덜 막힐지

이쪽 저쪽 여러 방향을 그려보면서 고민도 하다가...

 

올림픽도로와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시간보다 일찍 도착,

공장 앞에서 30분쯤 눈감고 기도(?)하다가 제 시간에 들어갑니다

 

오늘은 거래처에서 신제품을 생산해서 첫 출고하는 날,

출고 전에 공장 주관으로 협력업체들과 함께 고사를 지내면서

신제품의 성공적인 출시와 판매 증대를 기원하는 자리입니다

 

공장 현관 로비에 큰 상을 펴고 돼지머리, 시루떡, 과일을 놓고

향을 피우고 막걸리를 따라놓고 참석자들이 큰 절을 합니다

어느 한분이 이런 행사가 처음인지

막걸리 잔을 받더니 상에 올리지 않고

본인이 먼저 한모금 마시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집니다

 

제 순서에 다른 협력업체 분들과 함께 세명이 나란히 서서

막걸리 잔을 받아 상에 올리고 큰 절 삼배를 하고

돼지님에게 준비해 간 봉투까지 잘 물려드리고 나왔는데

  

뒤에 있던 아는 분이 조용히 귓속말로 알려줍니다

 

“양말이 뚫어졌네요, 아주 적나라하게”

 

놀라서 들여다보니 왼쪽 발 뒤쪽 아킬레스건 부근에

50원짜리 동전만한 구멍이 나 있는데

양말이 검정색이니 정말 적나라하게 잘 보입니다

 

이미 쪽은 다 팔린 거 뭐 어쩌겠습니까?

“새 양말 좀 사서 신을 수 있게 발주나 늘려 주세요”

이러고 지나갑니다

 

첫 출고하는 제품을 가득 싣고 서 있는 트럭 바퀴에

막걸리를 한잔씩 골고루 뿌리기도 하고,

트럭 앞에 걸친 테이프를 자르면서 폭죽도 터뜨리고,

고사떡과 과일에 막걸리와 위스키로 건배를 하고...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양말을 차에 잘 넣고 다니는데

오늘따라 아무리 찾아도 양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상태 그대로 어딘가에 들러서 점심도 먹고,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잠시 일하다가

저녁에는 옛 선생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와 보니

양말 구멍이 조금 더 커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도 오늘 있었던 일은 집사람에게는 절대 비밀입니다

혹시라도 알게 되면 양말도 제대로 못 찾아 신고 다녀서

집안 망신시킨다고 야단맞을 게 불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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