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청봉을 못 가봤는데...”
선생님이 처음 대청봉 말씀을 꺼내신 것은 2년전쯤이었다
처음에는 ‘웬 대청봉?’ 하면서 그냥 가볍게 스쳐 들었는데
같은 말씀을 여러번 하시니 계속 그럴 수가 없었다
작년 봄에도 날짜를 잡았다가 선생님 일정 때문에 연기했고
흐지부지 잊혀진 듯했던 것이 지난 5월초 다시 거론되어
마침내 6월15일로 거사일자(?)를 잡게 되었다
일단 그 정도 산행을 할 만한 친구들을 꼽아보니 여섯명,
연락을 해보니 전부 동행하겠다고 해서 날짜를 확정했는데
확정하고 보니 하필이면 바로 그날이 어머님 제삿날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그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친구들만 가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을 모시고 설악산에 간다면
생전에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셨던 어머님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난 십여년동안 원정 등산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준비한 산행에 따라다니기만 했지
내가 나서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기는 처음인지라
걱정스러운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선생님에게 이런 긴 산행이 무리가 아닌지 의문이었고
산행을 포함한 이벤트 전체를 의논할 친구가 마땅치 않았고
숙박, 차량, 음식 준비 등을 어떻게 분담할지 막막하기도 해서
한동안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머리가 복잡한 중에도 시간은 지나가서 그날이 왔는데
처음에 동행하기로 한 여섯명 중에서
처갓집 제사 때문에 못 간다고 한명 빠지고,
그날 다른 약속이 있는 걸 깜빡했다고 한명 빠지고,
심지어는 출발하던 바로 그날 교통사고가 나서 한명 빠져서
나를 포함 세명이 남았는데
그 중 한명이 군에서 갓 제대한 아들을 데려오고
선생님의 고향 후배 산악인 한분이 함께 해서
선생님을 포함한 일행은 여섯명이 되었다
그 여섯명도 각자의 사정에 따라 따로따로 출발하게 되서
갈 때는 차 세대가 갔고 올 때는 두대가 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과 함께 한 건 나 혼자뿐이었다
금요일 오후3시에 선생님 사무실에서 출발하기로 했는데
그날따라 시화에 있는 공장에 꼭 가야할 일이 있어서 늦었더니
지하철에서 선생님 독촉 전화를 여러번 받아야 했다
“빨리 와라!”
“네, 가고 있습니다 (휴~~~)”
여하튼 이렇게 해서 선생님을 모시고 대청봉 등정에 나섰는데
오색에서 일박한 후 다음날 새벽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
대청봉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오색으로 내려오기까지
일흔셋이신 선생님은 12시간 내내 줄곧 일행의 선두에 서서
따라가는 제자들을 힘들게 하시며 노익장을 과시하셨다
그리고 며칠후 대청봉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크게 인화해서
선생님께 드리고 왔는데 선생님 사무실에 손님들이 오시면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를 일이다
“제자들을 데리고 대청봉에 다녀왔는데 그거 별거 아니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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