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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만난 희귀고전영화 두 편

해군52 2023. 10. 8. 12:03

올드시네에서 희귀고전 영화를 볼 때마다 비어 있는 좌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영회 소식을 받으면 주변의 영화 동호인들과 공유하게 된다. 어제도 몇 분이 상영회에 오셨는데 그래도 여전히 아쉽다.

 

올드시네 상영회에서 만나는 영화의 감동은 언제나 깊고도 길지만 어제는 가을이라 조금 더 그랬던가 싶다. 영화 내용을 곱씹으면서 집에 와보니 우리 축구가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했고, 손흥민 선수의 토트넘이 리그 선두에 오르기도 해서 감동이 훨씬 증폭되었다.

 

어제 본 영화 한 편은 스릴러가 가미된 애절한 멜로, 또 한 편은 감동적인 아름다운 스릴러였다. 이번에도 올드시네가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을 희귀한 걸작들이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준비하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1. 머빈 르로이 감독의 <애정의 순간>(1966)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오프닝 장면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애절한 사연을 담은 멜로이지만 일부 느슨한 스릴러 같은 내용도 있다.

 

미국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인 남편의 안식년을 맞아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에 와 있던 미모의 여인 케이는 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미 해군 장교 마크를 만난다. 첫눈에 살짝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바다 건너 보이는 건물 안내를 빙자해 짧은 만남을 계속한다.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케이의 마음 한 구석 빈 공간이 커지면서 마크가 자리를 차지하는데...

 

문란해 보이는 옆집 여인은 의도적이지만, 케이의 어린 아들이 본의 아니게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데 기여하는 것도 특이한 설정이다. 마크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반전은 현실감이 좀 없기는 하다. 그래도 영화니까...

 

칸과 니스가 연상되는 남프랑스 해안 도시 풍경이 아름답다. 유명해지기 전 입센 로랑의 의상과 헨리 맨시니의 음악도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런 내용의 영화가 1967년 국내 개봉되어 흥행되었다니 당시의 도덕 기준으로 보자면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오즈의 마법사>(1939),<애수>(1940),<작은 아씨들>(1949),<쿠오바디스>(1951) 등 걸작을 남긴 머빈 르로이 감독의 연출작이다. 주연을 맡아 매력을 발산하는 진 세버그의 실제 인생은 영화보다 훨씬 더 파란만장했다는데 그녀의 굴곡진 짧은 인생은 넷플릭스에 있는 영화 <세버그>(2019)에서 볼 수 있다.

 

2. 찰스 크릭튼 감독의 <군중 속의 이방인>(1952)

 

집에 불을 지른 어린 꼬마 로비는 야단맞을까 겁을 먹고 무너진 건물 안에 숨는다. 그곳에는 청년 로이드가 누군가를 죽이고 시신을 방치한 채 숨어 있었다. 목격자를 그냥 보낼 수 없는 살인자는 꼬마를 끌고 현장을 빠져나온다. 이렇게 시신을 방치한 살인자와 시신을 목격한 꼬마의 이상한 동행이 시작된다.

 

두 사람의 동행 과정에서 딱한 사정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살인자 로이드는 꼬마 로비를 보호하고, 로비는 경찰에 쫓기는 로이드에게 의지하게 된다. 굶주림과 공포 가득한 험난한 여정으로 로이드의 형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도 머물지 못 하고 다시 위험에 내몰린다. 바닷가 마을에서 어선을 탈취해 바다로 나선 로이드는 로비가 기진해서 쓰러지자 중대한 결심을 하는데...

 

가슴 졸이며 영화를 보다 보면 양부모에게 학대당한 꼬마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집에 불을 지른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또 꼬마를 대하는 청년의 심경 변화를 보면 인간의 성선설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가 살인자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알아보지 못 했지만 살인자 청년으로 출연한 배우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어린 미소년에게 꽂힌 음악가를 연기한 다크 보가드라고 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찰스 크릭튼은 <라벤더 힐 몹>(1951),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1988)로 유명한 영국 감독이다. 크릭튼 감독에 대해서는 내 블로그 참조!

 

https://navy69.tistory.com/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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