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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 스토리

해군52 2002. 1. 20. 14:48

노래라면 대략 뭐든지 다 좋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뽕짝이다. 나의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는 동요가 아닌 뽕짝이었다. 전생에 한이 많았었는지 몰라도, 노래 가사가 뭔 의미인지 잘 모르면서도 뽕짝을 부르면 가슴 속이 조금은 후련해지곤 했다. 조그만 수첩에 깨알같은 글씨로 노래 가사를 적어 가지고 다니곤 했는데, 그 노래라는 것이 김정구, 남인수, 고복수, 박재홍, 박경원, 명국환, 현인, 이런 분들의 노래였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무슨 일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다가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무대(?) 위에 불려 나가 노래를 했는데, 무슨 노래인가 하면 남성4중창단 블루벨스가 불렸던 <열두냥짜리 인생>이었다. 나의 첫번째 큰 무대 데뷔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때 수많은 청중 가운데 한 여자애가 나를 유심히 보아 두었는데 이것이 내 인생에서 엄청난 사건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의 전말 역시 언제가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학교 졸업식 날 말썽 많던 우리반의 마지막 행사도 유별났다. 졸업식이라는 게 강당에서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전체 행사를 하고 난 후 반별로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나눠 받고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며......"라는 식의 마지막 훈시를 듣는 게 일반적인 패턴일텐데, 우리 반은 전혀 달랐다. 담임선생님의 훈시 대신 몇 명 대표선수들이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내가 부른 노래는 이상열의 <못 잊어서 또 왔네>였다. 교실 뒤편에는 학부형들이 가득했는데 까까머리 중학생이 그 앞에서 부른 노래치고는 참 가관이었다. 

 

그 당시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는 남일해, 최희준, 이상열, 유주용 그리고 좀 후에는 남진, 나훈아, 배호 이런 가수들의 노래였다. 신중현, 펄시스터즈, 김추자 계열의 소울풍 노래들이나 히식스, 키보이스 등 보칼그룹의 록풍 노래들이 강세였지만 나는 굳건히 뽕짝을 지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훈아 노래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엄청나게 좋아했다. TV 프로그램 <쇼쇼쇼>에 나훈아 특집이 나오는 날이면 신나는 날이었다. 

 

이광조, 유익종, 조용필, 이용, 이동원, 이문세, 유열, 김현식, 박강성, 이런 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뽕짝에 대한 내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현철,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의 노래까지 말이다. 

 

간혹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내 순서는 의례 맨 마지막이고 시간은 최소 30분이다. 내가 노래를 시작하면 친구들은 그냥 지들끼리 떠들면서 술마신다. 이럴 때 제일 편한 건 메들리다. 노래방 기계에 따라 다르지만 카바레 메들리나 관광메들리를 선택하면 기계가 알아서 노래를 계속 틀어주니까 선곡할 필요가 없다. 30분쯤 하면 적당하고, 1시간이 되면 좀 지루하고, 2시간이 되면 목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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