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라면 대략 뭐든지 다 좋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뽕짝이다. 나의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는 동요가 아닌 뽕짝이었다. 전생에 한이 많았었는지 몰라도, 노래 가사가 뭔 의미인지도 잘 모르면서 뽕짝을 부르면 가슴 속이 조금은 후련해지곤 했다. 조그만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노래 가사를 적어 가지고 다니곤 했는데 김정구, 남인수, 고복수, 박재홍, 박경원, 명국환, 현인... 이런 분들의 노래였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무슨 일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다가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무대(?) 위에 불려 나가 노래를 했는데, 무슨 노래인가 하면 남성4중창단 블루벨스가 불렸던 <열두냥짜리 인생>이었다. 나의 첫 번째 큰 무대 데뷔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때 수많은 청중 가운데 한 여자애가 나를 유심히 보아 두었는데 이것이 내 인생에서 엄청난 사건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의 전말 역시 언제가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학교 졸업식 날 말썽 많던 우리 반의 마지막 행사도 유별났다. 졸업식이라는 게 강당에서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전체 행사를 하고 난 후 반별로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나눠 받고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며 ......"라는 식의 마지막 훈시를 듣는 게 일반적인 패턴일 텐데, 우리 반은 전혀 달랐다. 담임선생님의 훈시 대신 몇 명 대표선수들이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내가 부른 노래는 이상열의 <못 잊어서 또 왔네>였다. 교실 뒤편에는 학부형들이 가득했는데 까까머리 중학생이 그 앞에서 부른 노래치고는 참 가관이었다.
그 시절 나는 남일해, 최희준, 이상열, 유주용 그리고 좀 후에는 남진, 나훈아, 배호... 이런 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신중현, 펄시스터즈, 김추자 계열의 소울풍 노래들이나 히식스, 키보이스 등 보컬그룹의 록풍 노래들이 강세였지만 나는 굳건히 뽕짝을 지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훈아의 노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엄청나게 좋아했다. TV 프로그램 <쇼쇼쇼>에 나훈아 특집이 나오면 신나는 날이었다.
이광조, 유익종, 조용필, 이동원, 이문세, 김현식, 박강성... 이런 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뽕짝에 대한 내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현철, 설운도, 태진아의 노래까지 말이다.
간혹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내 순서는 의례 맨 마지막이고, 시간은 최소 30분이다. 내가 노래를 시작하면 친구들은 그냥 지들끼리 떠들면서 술 마신다. 이럴 때 제일 편한 건 메들리다. 노래방 기계에 따라 다르지만 카바레 메들리나 관광메들리를 선택하면 기계가 알아서 노래를 계속 틀어주니까 선곡할 필요가 없다. 30분쯤 하면 적당하고, 1시간이 되면 좀 지루하고, 2시간이 되면 목이 살짝 아프다.
* 주 : 어울려서 노래방 가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혼자 가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잘 가게 되지 않는다. 어쩌다 어울리는 동반자가 있는 날이면 1주일쯤 젊어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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