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모음

아라파트 형에게

해군52 2004. 11. 29. 21:45

평생 민족의 생존을 위한 투쟁에 몸바쳤던 형께서
이 세상을 떠났으니 몸은 물론 마음도 편해야 할텐데
몸은 몰라도 마음은 그리 편치 않으신가 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 탓인지
아니면 조물주가 그리 만들었음인지
세상 살다 보면 옳고 그름이 많이도 뒤섞여서
옥석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도 많고
그저 남들이 하는대로 적당히 편하게 가는 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답니다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과 아랍
난마처럼 뒤얽힌 속에서 투쟁과 협상을 반복하면서
민족의 살 길을 찾아야했던 형의 일생이나
 
처자식 거느리고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서
직장 상사 눈치보고,
거래선에 굽실거리고,
은행에 가서 사정하느라
간과 쓸개 없어진지 이미 오래된 소시민의 일생이나
 
별다른 차이가 있겠냐고 묻는다면
영웅 반열에 오른 형에 대한 모욕이 될른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이라도 지키려고 했던 시절
그렇게 중요하게 보였던
사회정의랄지,
순수한 사랑이랄지,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랄지,
그런 것들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일거리가 없어서 돌아가지 않는 공장을 보고 있자면
역사 바로세우기라든가 국가보안법 운운은
너무도 먼 곳에 있는 허황한 소리로 들리고
솥단지 들고 길거리에서 데모하는 요식업자들의 아우성이
차라리 절실하게 들리고 피부에 와 닿으니
나이 50에 어지간히 속물이 되어가나 봅니다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나서 저 높은 곳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을 형에게 묻고 싶습니다
 
<형이 이 세상에서 이루려고 했던 그런 일들이
소시민들의 일상보다 정말 의미있는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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