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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생긴 일

해군52 2008. 3. 19. 21:31

지난 일요일 수락산을 다녀오는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에서 화장실에 들러 작은 볼일을 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70쯤 되신 한 어르신이 큰 소리로 휴대폰 통화를 하고 계십니다

 

워낙 큰 소리로 통화를 하시니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을 수밖에 없는데다
그 내용이 좀 특이한듯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봅니다

 

볼일을 천천히 보고 세면대에서 손까지 씻으면서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니
화장실 벽에 설치된 콘돔 자동판매기 앞에서 통화를 하시는데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었는데 물건도 안 나오고 동전도 안 나와서
거기 적혀있는 관리자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하시는가 봅니다

 

웬 콘돔 판매기가 지하철역 화장실에 설치됐는지 이상하기도 하지만
70되신 어른이 그 물건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셨을까가 궁금해집니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었는데 안 나온다고,

지금 당장 와보라고 하시니까
아마도 일요일이라 올 수 없고 월요일에나 오겠다고 하나 봅니다

 

그 어른을 슬쩍 곁눈으로 쳐다보니 건장한 체격에다 운동복 차림으로
한쪽에 태극마크가 달려있는 운동모자까지 쓰고 계시는 폼이
건방진 젊은이들 몇명쯤은 상대하실만큼 아주 당당해 보입니다

 

설마 손자한테 풍선 만들어주려고 그러시는 건 아닐테고 
아직도 그 물건이 필요하시다니 체격만큼 대단한 분이네
그런데 상대방은 누굴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손을 씻는 동안에도
그 어른의 일방적인 공격은 계속되지만 얼른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화장실을 나와 개찰구로 가다보니 아무래도 사건의 결말이 궁금합니다
발걸음을 돌려 화장실 세면대로 가서 씻은 손을 다시 씻는데
그 어른은 아직도 통화 중이십니다

 

이런 걸 설치해 놓고 사기를 치느냐,
아무래도 빨리 와야겠다고 호통을 치시니까
500원짜리 동전을 한개 더 넣어보라고 하나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500원짜리 동전을 다시 넣었는데도 안 되는 겁니다

 

동전을 더 넣어도 안 되는데 이 돈을 어떻게 돌려줄거냐고 하시니까
은행구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가 봅니다

우리은행 ***-***.... 이렇게 구좌번호를 불러주시더니
월요일에 조치가 안 되면 혼날 줄 알라고 확실하게 엄포를 놓으십니다

 

왜 하필 지하철 화장실에서 그런 걸 사려고 하셨을까?
그렇지만 저렇게 큰 소리로 떠들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네...

 

그러다가
아마 화장지 자동판매기인 줄 착각하고 동전을 넣었다가
일이 꼬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오릅니다

 

다시 화장실을 나와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이번에는 벽에 걸려 있던 커다란 두루마리 화장지통이 생각납니다

 

화장지가 필요하면 그냥 그걸 쓰면 되는데...

 

그러면 진실은 무엇일까?
과연 화장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세상의 진실을 밝히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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