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111

창을 보다

한 공간에서 지낸지 60년을 넘기고 나니 보이지 않던 창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도 힘겹게 발돋움까지 하고서야 겨우 창을 보기는 하지만 창밖 넓은 세상은 보지 못하고 창만 볼 때가 많다 창만 보고도 창밖 세상을 이야기하는 건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풍부한 상상력인지 아니면 우매함인지... 창만 보다 창을 보다 창밖을 보다 그런데 창밖에는 정말 하늘이 있기는 한 걸까?

사진따라 2019.09.07

나무가 아프면

나무에게 주는 말 - 이성선 나무야, 너는 아프냐. 너 가까이 있으면 두 팔 벌려 말없이 나를 껴안아 주는 나무야. 너에게 기대면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 하늘 수많은 별들의 생각도 듣게 된다. 낙엽을 몰고 가는 바람의 아픈 발걸음도 듣는다. 너에게 기대면 갑자기 맑은 사람이 되는구나. 너와 함께 있으면 다시 사랑에 눈뜨는구나.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때로 네게 기대고 싶다. 아침이면 단톡방에 시 한편이 배달된다 친절한 해설까지 함께... 시에 별 안목이 없기는 하지만 천천히 읽어보면 간혹 어느 한 대목이 가슴에 와 닿기도 한다 위의 시도 며칠 전에 그렇게 받았는데 그 느낌 그대로를 잊어버리기 전에 사진 창고에서 어울릴 사진을 찾아보았다 나무와의 동기화! ‘동기화’는 핸폰과 컴에만 필요한 게 아..

사진따라 2019.09.04

나의 첫사랑

고교동창인 등산의 고수가 주관하는 등산모임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토요일 오전에도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토요일 오후2시, 구기동 냉면집 출발, 사자능선을 거쳐 보현봉과 대남문을 찍고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일체의 연락 없이, 그 시간에 온 친구들끼리 등산하고 간단하게 맥주 한잔만 하고 바로 헤어지는 모임이었다 내가 이 모임에 처음 참석했던 날은 거의 악몽이었다 리더인 친구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설렁설렁 걸었고, 다른 친구들은 부지런히 쫓아갔고, 나는 네 발로 기었다^^ 해군 장교 훈련 이후 이런 빡센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오기 발동, 이런 미친 짓(?)을 매주 반복하기 열 번쯤?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숨막힘과 다리 통증이 사라지고, 그 대신 온몸에 나른하고 기분좋은 피곤함이 찾아왔다 나의 등산..

사진따라 2019.08.31

사랑 그놈

늘 혼자 사랑하고 혼자 이별하고늘 혼자 추억하고 혼자 무너지고사랑이란 놈 그 놈 앞에서언제나 난 늘 빈털털일뿐늘 혼자 외면하고 혼자 후회하고늘 휘청거리면서 아닌 척을 하고사랑이란 놈 그 놈 앞에서언제나 난 늘 웃음거릴뿐 (박선주 작사,작곡 1절 가사) 비행기에서 잘못된 좌석 배정에 항의하다가술에 취해 소란을 일으킨 죄값(?)으로5년이나 무대에 서지 못했던 가수 바비 킴의컴백 콘서트 에 다녀왔다  본인 입장에서는 억울함이 많이 있었을텐데그동안 어떻게 삭이고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무대에 선 모습이 좀 안쓰러워 보였다 최근 복면가왕을 비롯한 TV에 출연했고,2009년에 발표했던 소울풍의 이란 노래를 타이틀로 한 앨범도 새로 발매했다 1973년생이니 벌써 40대 중반,황금같은 5년의 공백이 너무 아쉽기는..

사진따라 2019.08.27

같은 곳, 다른 때

사진을 다시 보니 비슷한 곳에서 찍은 장면들이 많다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올림픽공원, 한강변... 수십 번, 많게는 수백 번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매번 내 눈에 들어온 장면은 거기서 거기쯤이었을까? 위치와 각도가 조금 다를 뿐 비슷해 보이던 사진들을 비교하겠다고 편집까지 해놓고 보니 더 비슷해졌는데 그래도 다르게 보이는 건 다른 계절 덕분인 듯하다 사진 창고를 들여다보다가 이렇게 쓸데없는 짓까지 하게 됐는데 그래도 어떤 위치에서 어떤 각도로 찍은 사진이 더 좋을지 감을 잡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다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저 항아리 조형물은 잘 있을까?’ ‘메카세콰이어 길은 여전할까?’ 날씨 좋아지면 이번 주말에라도 한번 가볼까?

사진따라 2019.08.24

바위가 될까?

바위 - 유치환 내 죽으면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시인이 강렬한 어조로 노래한 것처럼 수억년을 견디며 비와 바람에 깎이는대로 깎인 바위는 자연이 만들어낸 지금의 모습이 되어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산이나 바다에 가면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말없이 같은 자리에 있는 바위 중에는 눈에 익은 모습도 많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상,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불자, 모자와 망토 차림의 수도사, 짝짓기하고 있는 거북이, 곰, 사자, 용, 독수리, 상어, 주먹, 해골, 촛대... ..

사진따라 2019.08.21

사람, 자연이 되다

원시 인류가 두 발로 서서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무섭던 불을 다루고 정교한 도구들을 사용하게 되자 주변의 다른 동물들을 제압하고 척박한 자연 환경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바꾸어 놀라운 문명을 건설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멋대로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자연 파괴자가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심각한 환경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도시에 오래 살면서 자연을 잊은 채 떨어져 있다가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 품 안으로 들어가 보면 어느 순간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자연 속을 걸으면서 카메라에 풍경을 주워담다 보면 그 풍경 속에 있던 사람도 함께 담아질 때가 있다 우연히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르는 사람이거나 동반자인데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진따라 2019.08.04

한강변 풍경

아리수 사랑 - 신달자 푸르른 살결위에푸르른 하늘이 와 덮었다아침마다 푸르른 강이 태어나고천년 생명의 메아리가 울었다기우는 해도 달도 몸에 품었다역사의 환난도 몸에 담았다아리수여 아 아리수여다시새천년을 잉태하는 푸르른 여자  한강에 대한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 : 한강교 보수 공사 중, 버스를 탄 채 부교를 건넜다 영등포에서 샛강을 건너면 땅콩밭이었다 (지금의 여의도)  겨울이면 거의 한달 정도는 한강물이 꽁꽁 얼어서 걸어서 건너거나 강변에서 썰매를 탈 수 있었다 겨울에 한강물이 얼지 않으면 그게 뉴스거리였다 한강에는 차가 다니는 한강교(지금의 한강대교)와 기차가 다니는 한강철교(지금도 한강철교)만 있었다광진교도 있었지만 너무 먼 곳에 있어서 몰랐다  1960년대부터 제2한강교(지금의 양화대교)와 제3한강..

사진따라 2019.08.02

폭포

폭포 – 고옥주 떨어져 내려도 희망이다절망의 힘도 이렇게 크면 희망이 된다비명도 없이 곤두박질 치다보면딛고 섰던 땅까지 움푹 파지지만그보다 더 세찬 무엇이생명을 받들고 위로 솟구치고야 만다수직의 절망이 수평의 희망으로튕겨 흐르는 숨막힘​ 한강변 강변도로 양화대교 남단을 지나 서쪽 방향으로 안양천과 갈라지기 직전에 커다란 인공폭포가 있었다1979년에 세워졌는데 한동안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서김포공항으로 향하던 신혼부부들의 기념촬영 명소였다 30년이 지난 2010년 안전 문제로 가동이 중단되었다가 인근에 월드컵대교가 건설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장소를 조금 옮겨 복원하기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한다‘추억의 촬영장소’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한 듯하다  올해 말쯤 월드컵대교가 부분 개통되면 이 인공폭포도 다시 ..

사진따라 2019.07.31

내 자리는 어디일까?

어쩌다 보니 경로석에 앉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경로석에 앉으면 젊은 것이 앉았다고 눈총받을 것 같고 일반석에 앉으면 바삐 출퇴근하는 청춘들에게 미안해서 아직 튼실한 두 다리로 서서 가는 게 오히려 편하다^^ 간혹 멀쩡해 보이는 중년남자가 임산부 보호석에 앉은 모습을 보면 ‘마음도 몸만큼 편안할까?’ 의문이 든다 혹시 꼭 그래야 할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든지 작은 자리보다는 큰 자리, 낮은 자리보다는 높은 자리, 나쁜 자리보다는 좋은 자리를 원하겠지만 크고, 높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그만큼 자리값을 해야 마땅할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가 보다 중국 한(漢)나라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후손인 어린 아이를 조상의 신위에 앉혀 놓았다는데 조상의 영혼이 후손인 어린 아이..

사진따라 2019.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