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111

별별 간판

디카를 들고 한창 마구 찍기를 하고 다닐 때어느 모임의 회원 한 분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간판은 왜 그렇게 찍어요?“ 물론 간판만 즐겨 찍은 것은 아니었고, 많이 찍다 보니 간판도 찍은 것이었는데 간판을 찍는 모습이 너무 이상했는가 보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그렇게 대답해버리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나름 이유가 있는 것처럼 얼버무리고 말았더니그 후로 간판 사진이나 찍는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두고두고 들어야 했다 그동안 찍어놓은 간판 사진들을 들여다보니간판 디자인이 멋지거나 촌스러운 것,업소 이름이 예쁘거나 특이한 것,간판의 배경이 아름다운 것,써놓은 내용이 유별난 것 등등업종 불문하고 정말 별별 간판들이 다 있다 쓰레기도 잘 모으면 쓸모있는 자원이 되고시시한 사진도 잘 모으면..

사진따라 2019.11.25

흰 구름

구름 나이 - 황베드로 푸른 하늘에 피어난 저 흰 구름몇 살이나 되었을까? 깊은 산 샘골에서아기 샘물로 태어나 산도랑 지나고봇도랑 지나고개울, 강 지나서바다에 머물다가 할아버지 되시어 하얗게 피어 오른저 흰 구름 몇 살이나 되었을까 위 시를 쓴 시인은 수녀인데 동시 900편을 썼고, 동시집을 무려 13권이나 출간한 분이라고 한다여러 문학상 수상자이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작품도 있는 1940년생이니 이제 팔순의 고령인데세상을 보는 눈은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황베드로 수녀 소개 기사 보기!https://www.yna.co.kr/view/AKR20190108164300005 비가 개이면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구름의 모양이 양이나 강아지처럼 보이는가 싶다가 흩어져서 다시 글씨나 숫자를 만들..

사진따라 2019.11.24

나무의 꿈

사물의 꿈 1 - 나무의 꿈 - 정현종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5년 전 어느 모임을 따라 천리포 수목원에 갔을 때 친절하게 안내하면서 설명해 주던 분이 있었는데알고 보니 유명한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님이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근무하다가평생 좋아할 일을 찾기 위해서 무조건 사직하고나무와 사랑에 빠져서 나무만 찾아다니는 분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나무와 나무 주변 사람들에 얽힌 일화들을 모아서저술과 강의를 하는 ‘나무 인문학’ 분야의 고수이다 한동안 부천 도서관에서 이 분의 강..

사진따라 2019.11.18

나무 조각들

나무 – 천상병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그리하여 나는 그 꿈 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나는 또 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더해지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가 전시장에서 만나는 조각처럼 보여서 작품 감상하듯 한참 바라볼 때가 있다  비바람과 날씨가 작품을 만드는 것인지아니면 나무 자신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볼수록 신기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고,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볼 수도 있는 것은세상만사 모든 일과 마찬가지인 듯하다  ..

사진따라 2019.11.10

나뭇잎 찬가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나뭇잎이벌레 먹어서 예쁘다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어쩐지 베풀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떡갈나무 잎에 벌레구멍이 뚫려서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이 잘못인 줄 안다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별처럼 아름답다 시인은 벌레 먹은 나뭇잎을 밉다 하지 않고 남을 먹여가며 살았으니 예쁘다고 노래했다베풀며 사는 삶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리라  시인은 벌레 먹은 나뭇잎을 칭송하려다 보니상처없이 매끈한 나뭇잎은 밉다고 표현했다한쪽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려는 의도이겠지만매끈한 나뭇잎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까? 봄여름에는 햇빛을 받아서 에너지를 만들고,가을이면 예쁜 색의 옷으로 갈아입고 뽐내고,가지를 떠나 땅에 뒹굴어도 멋을 잃지 않는다 거친..

사진따라 2019.11.07

가을 풍경

여의도의 삭막한 빌딩 숲 속에서 반가운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요즘 세상의 속도는 따라가기가 너무 버겁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50년이라고 하면 우리 일생에서 한나절만큼도 안 될텐데 그런 50년 동안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고, 그리고 변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50년 전과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 다른 나라인 것 같아서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랄 때가 아주 많다 그런 중에도 가을은 여전히 아름답다 굳이 멀리 야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가을이 아주 깊게 느껴진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최양숙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최양숙 노래 듣기! https://www.youtube.co..

사진따라 2019.11.02

휴식의 맛

쉼표 - 정연복 하늘을 흐르던/흰 구름 하나/ 저기 산마루에 잠시/걸터앉아 있다/ 유유히 흐르는 것도/피곤한 모양이다. 창공을/훨훨 날던 새/ 나뭇가지에 앉아/한숨 돌린다/ 가야 할 길이/아직 먼가보다. 지상을 거니는 나의/발걸음도/ 아무 때고 고단할 때면/편히 쉼표를 찍자/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의/씩씩한 걸음을 위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런 광고 카피가 한참 유행했었는데 정작 어떤 광고였는지는 기억이 없어서 검색해 보니 H카드사 광고였다^^ '열심히 일한 당신, 더해라!' '적당히 일한 당신, 나가라!' 등등... 카피가 유행하면 패러디도 많이 생긴다 우리 세대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지난 몇십년 세월을 돌이켜보면 정신없이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쉼표 없이 음표만 가득한 악보, 브레이크..

사진따라 2019.10.27

갈등

뉴스를 보기 싫어한지는 오래 되었지만 어쩌다 뉴스를 보게 되면 무섭기까지 하다  요즘 휴일이 되면 누구는 광화문으로, 또 다른 누구는 서초동으로 향한다가는 곳이 다른 상대방은 곧 적이다그가 친구든 가족이든 관계없이 그렇다 내 편, 네 편을 아주 쉽게 가르고네 편에 대해서는 서릿발같이 날카롭다가도, 나와 내 편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인터넷에 오른 글이 자기 의견과 다르면 댓글에는 멱살잡이에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글쓴이가 관련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원로이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살아야 할까?꼬이고 꼬여서 풀기 어려운 실타래라면일도양단밖에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

사진따라 2019.10.11

지리산 벽소명월 12년산 카드

명절이나 새해에 받는 모바일 카드가 대부분 흔한 내용인데다 보내는 이의 이름도 없다보니 고맙기는 하지만 왠지 밍밍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을 더 즐겁게 할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에서 일반 카드에 간단한 인사말을 넣어서 보내다가 2017년부터 내가 찍은 사진으로 카드를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보는 작품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찍은 사진에 내 이름을 넣고 거기에 상대방의 이름과 인사말까지 넣으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카드가 되는 셈이다 상대방도 나처럼 생각하고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엉뚱한 짓을 반복하다보니 실력이 늘었는지^^ 이번 추석 카드는 예전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2007년 6월 1일이었으니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지리산을 종주하다가 벽소령 산장에서 1박 했는데 그날 밤 ..

사진따라 2019.09.13

몰카 모음

요즘은 누구나 모델이고, 아무나 사진사인 세상이다 멋진 풍경이 있는 유명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동네 길거리에서도 핸폰으로 사진찍는 장면을 흔히 본다 공연장 입구에서 입장권을 한 손에 들고 ‘인증샷’을, 조금 특별한 장소에서는 소위 ‘인생샷’을 찍는 것이 특별할 것도 없는 너무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사진을 찍히면 영혼을 빼앗긴다면서 도망다니기도 했다던데 이런 장면은 더 이상 코메디에도 나오지 못 할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이 된지 벌써 오래이다 아직도 내 안에 숨어있는 ‘꼰대‘의 시각으로 보면 별것도 아닌데 온갖 폼을 재면서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이 조금 경망스럽게 보일 때도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쉽게 누릴만한 ‘소확행’인 것만은 확실하다 ‘내 맘대로 인증샷’이든 ‘내 멋대로 인생샷’이든 원하는 사진 한 장에..

사진따라 2019.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