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따라 111

겨울 풍경

겨울 길을 간다 - 이해인 봄 여름 데리고/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추우니까 겨울이긴 하지만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 날씨도 날씨지만 그보다 마음이 추워서인 듯하다 미루고 미루다가 해 넘기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며 잡았던 약속들은 허망하게도 전부 취소되었다 올 한해를 덮어버린 코로나 바이러스가 갈수록 기승이다 마지노선 같았던 신규 확진자 1천명을 넘어서고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로 계속 달려든다 개발되고 있는 백신과 치료제에 희망을 걸어야겠지만 언제쯤이나 확실한 대책이..

사진따라 2020.12.17

손을 잡다

조용히 손을 내밀어 - 이정하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하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단계는 두 발로 걷고 손을 자유롭게 사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손이 자유로워진 인간이 불을 피우고 정교한 도구를 사용한 결과 오늘날의 찬란한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낼 때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은 손을 잡으면서 악수를 나눈다 이렇게 ‘손을 잡는 것’은 ‘호의, 친선, 화해’를 의미한다 손을 잡으면 마음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손을 잡는다 겨우 백일 지난 손녀가 고사리같이 작은 손으로 내 ..

사진따라 2020.08.31

모자를 쓴 여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위에 가면 커다란 모자를 쓴 라는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스페인과의 수교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파리 방돔광장, 싱가폴 가든베이, 뉴욕 보태니컬가든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장소들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 는 78세의 고령에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페인 출신 세계적인 조각가 마놀로 발데스의 작품이다 발데스는 벨라스케스, 마티스, 피카소 등 거장들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을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알루미늄 조각상은 가로와 세로 6.8m, 높이 3.85m인 대작인데 작가가 공원에서 모자를 쓴 여인의 머리 위로 나비가 날아드는 장면을 보고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얼굴과 모자를 결합하면서 눈, 코, 입 등 얼굴의 구체적 형상은 생략하고 단순하게..

사진따라 2020.08.29

나비

나비가 앉았던 자리 - 한옥순 이것도 사랑이라고 꽃이 피는구나 이것도 이별이라고 꽃이 지는구나 이것도 인연이라고 흔적이 남는구나 잠시 머무른 자리가 참 고요하구나 나비가 아무 꽃에나 앉는다고 절대 탓할 일이 아니고, 꽃이 아무 나비나 받아들인다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꽃이 향기로 나비를 부르고, 나비가 그 향기에 끌림은 먹이를 구해야 하고 자손을 퍼뜨려야 한다는 각자의 절실한 필요에 따라 공조하는 자연의 섭리일 뿐이다 시인은 꽃과 나비가 어울리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이를 사랑과 이별, 인연과 흔적 같은 인간사에 비유한 듯하다 ‘참 고요하구나’라는 마지막 한 마디가 아주 절묘하다 나비는 전 세계에 약 18,000종, 우리나라에 250여종이 있다고 하니 크기와 색깔에 따라 종류가 많기도 하다 나비의 몸통을 보면..

사진따라 2020.08.26

등대

등대 - 정연복 작아도 빛나는 등대 하나에 기대어 어둠에 잠긴 끝없이 너른 바다에서도 돛단배는 길을 잃지 않는다. 말없이 등을 대주는 고마운 사람 하나 있어 슬픔이 밀물지는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깜빡이는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다. 항해에 필요한 지도나 위치추적 장비가 없던 시절에 뱃길을 알려주던 등대는 바로 희망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갈 길을 밝게 비춰줄 구원자나 선도자에게도 등대라는 호칭을 사용해왔다 성실과 근면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세상에 들어서자 야근하느라 밤에도 불을 켠 회사를 등대라고 부르면서 긍정적이던 등대의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온지 오래인데 언제 그칠지 예측조차 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이니 아날로..

사진따라 2020.08.21

공든 탑

탑 - 조영수 모난 돌 금간 돌 손을 든 돌 돌이 돌을 무등 타고 서 있다 비맞고 바람 맞고 눈 맞으며 함께 나이를 먹는 돌 밀어내지 않고 투덜대지 않고 꽉 끌어안고 돌이 돌을 무등 타고 서 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인다 도보여행길이나 등산길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돌탑의 모양이나 완성도는 제각각이지만 돌탑을 쌓는 사람의 마음만은 오직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을 담았을 것이다 누군가 돌을 하나씩 쌓아서 만들었을 작은 탑을 보면 누가 어떤 사연으로 그런 탑을 쌓았을지 궁금해지고 그 돌탑 위에 돌 하나쯤 얹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바람과 달리 무너져 내린 탑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애잔한 마음이 든다 요즘 조선왕조실록 강좌를 듣다 보니 지난 역사에서도 공든 탑이 무너진..

사진따라 2020.08.18

웃는 기와

웃는 기와 - 이봉직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 쪽이 금 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 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2년 경주 영묘사 터에서 여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깨진 수막새 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 수막새는 골동품상을 거쳐 공중의로 근무하던 일본 청년의 손에 들어갔고, 이 청년을 따라 일본으로 갔다 1964년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장이던 박일훈은 30여년전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소개되었던 이 수막새의 소재를 추적한 결과, 조선에서 공중의로 근무하던 일본 청년이 아직도 소중하게 잘 간직..

사진따라 2020.08.14

어둠을 밝히다

인간은 무려 150만년 전부터 불을 사용해 왔다고 한다 문명사회에 들어서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등잔, 가스등, 양초 등을 쓰다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전등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전등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다 1808년 파리 콩코드 광장에 전지와 탄소 막대를 이용해서 밝은 빛을 내는 가로등이 설치되었는데 장치가 복잡하고 빛이 너무 밝아서 가정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1879년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필라멘트가 들어있는 백열전등과 발전과 배전 관련 장비들을 함께 발명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면서 어둠 없는 세상이 시작되었다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스위치 하나만으로 간단하게 불을 켤 수 있게 된 인간은 활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렸지만 백열전구의 밝은 빛 아래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하는 많은 ..

사진따라 2020.08.11

해변의 여인

물 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말없이 거니는 해변의 여인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빛에 물들은 여인의 눈동자 조용히 들려오는 조개들의 옛이야기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 1969년 O레코드사 전속 작곡가이던 박성규는 월급도 변변하게 받지 못하는 무명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레코드사 직원들의 남이섬 여름 야유회에 따라갔던 박성규는 해질 무렵 강 건너 바위 위에서 강바람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인을 보자 순간적으로 악상이 떠올라 이를 스케치하듯 기록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박성규는 남이섬에서 기록한 악상을 정리해서 곡을 완성하고, 긴 머리를 휘날리는 여인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살려서 가사까지 직접 써내려갔다 이렇게 만든 노래의 제목은 이었는데 해변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히트할 가..

사진따라 2020.08.09

샘터

1970년에 창간된 월간 교양지 ‘샘터’가 50주년을 눈앞에 두고 폐간 위기에 몰렸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한 ‘샘터’는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글을 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에 젖은 이야기들을 많이 소개했다 책값이 ‘담배 한 갑보다 싸야 한다’는 발행인의 소신으로 창간 당시 100원이었던 책값은 요즘 3,500원이 되었다 최인호의 소설, 법정 스님의 수필, 정채봉의 성인동화 등 쟁쟁한 유명 필진의 글이 오래 연재되면서 사랑받았고, 장욱진, 천경자 등 유명 화가들의 그림도 자주 실렸다 한때 50만부 이상을 기록했던 발행 부수가 2만부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이 이어지자 지난 연말, 폐간과 다름없는 ‘무기한 휴간’ 계획을 발표, 애독자들을 ..

사진따라 2020.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