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111

고양이같은 봄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내가 고양이를 제대로 대해 본 적이 없는 탓이겠지만 봄과 고양이 사이에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 보였는데 봄의 느낌을 고양의 털, 눈, 입술, 수염에 연결시킨 시인의 신선하고도 섬세한 감각이 너무나 놀랍다 자료에 의하면 이장희 시인은 1900년 출생에 1929년 사망했는데 아주 짧은 생을 그것도 자살로 마감했다 시인은 대구의 부호이자 조선총독부 고위직에 오른 친일 인사의 무려 11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다섯 살 때 모친이..

사진따라 2020.05.23

말타면

좀 낯설지만 ‘말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말끼리 치열하게 선두 경쟁하는 ‘경마(競馬)’가 아니라 말고삐를 끌어당긴다는 ‘견마(牽馬)’에서 온 말이라는데 발음이 어려워서 그랬는지 ‘경마’로 바뀌었다고 한다 말이 지금의 고급 승용차처럼 신분의 상징이던 시절에 말을 처음 타면 왠지 우쭐해져서 어깨에 힘을 주다가 자연스레 고삐를 잡아줄 하인을 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반짝 유명인이 되면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에 나서기, 어느 분야에서 이름이 좀 나면 권력을 향해 달려가기, 팔뚝에 작은 완장이라도 차면 완전 다른 사람 되기... 비자발적 집콕하는 상황에서 역사 다큐를 자주 보는데 말타면 경마 잡히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 탓에 결국에는 험한 꼴로 마무리하는 인물들이 너무도 많다 힘을 가지면 끊임없이..

사진따라 2020.05.17

소가 웃다

소를 웃긴 꽃 - 윤희상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화창한 어느 봄날 들판에서 작은 꽃이 막 피어나고 근처에서 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움직이는 소의 발에 밟혀 부서지기 직전인 작은 꽃이 젖먹던 힘까지 전부 모아 소의 발바닥을 밀어올리자 소는 발바닥이 간지러워 쓰러질듯이 기우뚱거린다 봄날 평화로운 들판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유명 인사들이 남을 비판하면서 ‘소가 웃을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요즘..

사진따라 2020.05.15

거친 풍경

사랑하는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마약 중독과 외도, 그리고 이혼까지 고통과 혼란 속에서 인생의 밑바닥으로 향하던 여인은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미국 서부 4,200km ‘악마의 코스’ 도보여행 길에 나선다 야외 생활 경험이 전혀 없던 그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험난한 자연 속에서 육체적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연이 주는 기쁨과 용기 그리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절망의 늪에 빠졌던 26세 여성의 고백을 담은 자서전을 영상에 옮긴 영화 (2006)는 사람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절대고독의 공간과 그 안에서 자신과 싸우며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달 아니면 화성에나 있을 것 같은 낯설고 거친..

사진따라 2020.05.13

꽃이 있는 풍경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듯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꽃을 보면서 꽃의 아름다움만 느낄 뿐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얼마나 울었는지, 또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얼마나 울었는지는 알지도 못 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럴 때 시인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 하고 지나친 수많은 좌절과 극복 과정이 있었음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그들은 역시 시인이지만, 시인이 아닌 나는 여전히 꽃의 아름다움..

사진따라 2020.05.10

초록색 풍경

하얗다, 노랗다, 빨갛다, 파랗다, 까맣다.... 순수한 우리말에 색깔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의 색깔을 표현하는 ‘초랗다’나 ‘초란’이라는 단어는 왜 없을까? 궁금하면 못 참으니 바로 인터넷 검색!ㅎ 짙은 초록색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에 ‘갈맷빛’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하얗다’처럼 사용할 수는 없다고 한다 또한 초록색green을 푸른색blue과 혼용하기도 한다 (예 : 횡단보도에서 보는 파란 신호등) 후배들을 만났을 때 가끔 써먹는 잘난 척하기 메뉴! 참이슬병 상표에 있는 잔글씨를 읽어야 하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고, 읽어주면서 이 말 한마디를 덧붙인다 “글씨가 있는데 왜 안 보일까?” 영화 많이 보고, 컴 들여다 보고, 책도 좀 보는 편이라 눈이 일을 많이 하는..

사진따라 2020.05.08

하늘이 있는 풍경

반달 - 윤극영 작사,작곡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저녁을 먹고 앞마당에 돗자리나 멍석을 깔고 누우면 주변에 어둠이 깔리고 하늘에는 별이 떠오르기 시작, 곧 수많은 별의 강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흐른다 모기나 날벌레를 쫓기 위해 한켠에 솔가지를 태우고 간혹 수박이나 참외를 한 조각씩 나눠먹기도 하면서 이어지는 어른들의 재미없는(?) 이야기 속에 잠이 든다 우리나라에 도착한 외국 사람들에게 첫 인상을 물어보면 아름다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원더풀!’이라는 칭찬을 연발한다는 내용이 교과서에 ..

사진따라 2020.05.05

모스크

이슬람 사원은 아랍어로 ‘'마스지드’, 이슬람이 지배하던 에스파니아에서 ‘'메스키따’, 영어로는 ‘'모스크''’라고 한다 국가가 술탄을 위해서 대규모 모스크를 짓기도 하지만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나 부자들의 희사금으로 지어진다 무슬림들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아서 약간의 재산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는데 모스크는 희사금이 몰리는 최고의 장소이다 모스크는 예배드리는 곳일 뿐만 아니라 삶의 중심이자 마을의 상징으로 반드시 학교, 도서관, 병원, 목욕탕, 여관 등이 딸려 있고 그 주위에 큰 시장이 형성된다 또한 휴식의 공간이기도 해서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더운 날씨를 피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종교이지만 이슬람교는 ..

사진따라 2020.05.02

대웅전

부처 - 이재봉 점심 공양을 마치고 일주문을 나서는데 식당 앞 노점에서 할머니가 산나물을 팔고 있다 쪼그리고 앉아 흥정을 하는데 어린 손자가 할머니 등 뒤에서 진짜 부처처럼 웃고 있다 대웅大雄은 산스크리트어 마하비라를 번역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에 대한 많은 존칭 가운데 하나이다 절에서 흔히 보이는 대웅전大雄殿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다 대웅전大雄殿보다 격이 높은 대웅보전大雄寶殿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다시 각각의 좌우에 보좌하는 보살들을 모신다 그리고 비로나자불을 모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나 아미타불을 모시는 무량수전無量壽殿처럼 주존으로 모신 부처나 보살에 따라서 법당의 이름이 다르다 (이상 인터넷 자료 참조) 위 시에 등장하는 산나물 파..

사진따라 2020.04.28

산이 있는 풍경

산도화山桃花 - 박목월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한때 산에 가고 싶어서 몸살을 앓던 시절이 있었다 어지간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는 날에도 주말만 되면 배낭 둘러메고 산으로 가는 발걸음에 거칠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 사랑이 식은 걸까? 멀리 보이는 북한산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뛸 때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지 말아야 할 핑계거리를 찾으면서 망설일 때가 훨씬 많아졌다 봄꽃은 지천으로 피었다가 이제 거의 떨어졌겠고 봄눈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도 벌써 흘러갔겠지만 암사슴처럼 계곡물에 발을 씻으러 한번 가볼까? 그런데 국립공원 계곡물에 발을 씻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니 발 씻..

사진따라 202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