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111

굴뚝같다

선사시대 집터에서도 우리 고유의 난방시스템인 구들이 발견되었지만 굴뚝의 존재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5세기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무쇠 화덕의 구조로 보아 고래 끝에 수직으로 솟은 굴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경복궁 후원에는 여러 기의 아름다운 굴뚝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보물 제810호와 제811호로 지정된 자경전 십장생 굴뚝과 교태전 아미산 육각형 굴뚝이다 굴뚝 위에는 작은 집 모양의 검은 연가(煙家)가 있는데 배출되는 연기가 고르게 퍼져나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굴뚝들은 연기를 배출하는 구조물이기는 하지만 궁궐의 전각이나 담장들과 어울릴만큼 호화롭기도 하고 최고의 세련미를 갖추어서 전혀 굴뚝같아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절집이나 향교 또는 양반들의 고택에서도 정원의 분위기를 한껏 ..

사진따라 2020.07.29

해우소

해우소解憂所, 글자 그대로의 뜻은 ‘근심을 푸는 곳’! 외출 중에 급하게 화장실을 찾았던 경험이 있었다면 이 단어의 심오한 뜻을 확실하게 이해할 듯하다^^ 해우소라는 단어는 한자어이기는 하지만 중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스님이 만들어서 절에서 사용했었다고 하며 번뇌를 씻어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의미하기도 한다 남녀 사이의 벽이 많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화장실은 아직도 ‘남녀유별’의 개념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곳이라 급하다고 해서 잘못 들어가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남녀 표시는 단순한 글자 외에 디자인 감각을 잘 살린 상징을 많이 사용하는데 재미있는 것들도 자주 보인다 중국 차마고도를 걷다보면 어느 객잔에 ‘천하제일 화장실’ 팻말과 함께 벽에 시까지 한 수 써놓은 화장실이 있는데 옥룡산 풍광이 보이기는 하지만..

사진따라 2020.07.24

쓰레기통

한강 북쪽 강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성산대교와 가양대교 사이에 커다란 동산 두 개를 포함하는 넓은 공원이 있다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 타기에 좋은 둘레길은 기본이고, 두 동산 위에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라는 공원이 있고, 주변에 난지한강공원, 평화의 공원, 월드컵경기장 등이 모여 있어서 한나절 산책이나 운동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이곳은 원래 난초(蘭草)와 지초(芝草)가 가득해 난지도라 불리던 섬이었는데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가 된 후 15년 동안 쌓인 쓰레기가 두 개의 거대한 산을 만들었다 쓰레기가 쌓이면서 쓰레기 더미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가 한강과 주변 토지를 오염시켰고, 매립가스로 인한 화재와 악취 발생 등 심각한 환경문제와 수많은 민원을 야기했다 이에 서울시는 1991년부터 해결방안을 검토하기 ..

사진따라 2020.07.22

공중전화

우리나라 공중전화제도는 1954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용자가 전화국까지 가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전을 넣고 쓰는 공중전화기는 1962년에 등장했으며, 시내 중심가부터 거리에 전화부스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공중전화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성장을 거듭했고 무선호출기 삐삐의 유행으로 수요가 폭발하기도 했다 어지간한 길거리에는 공중전화 부스가 여러 개 있었고 동전통을 노리는 ‘전문 털이범’의 절도사건도 잦았다 급하게 전화할 일이 있어서 공중전화 부스까지 왔는데 누군가 통화를 오래 하고 있어서 발을 동동거렸다거나 통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동전이 떨어져 애태우던 일은 흔하게 겪어보았을 공중전화 전성시대의 기억들이다 하지만 휴대폰이 국민의 필수품이 되자 15만대가 넘던 공중전화는 20년만에 3만대 수준으로..

사진따라 2020.07.19

빨간 우체통

편지 -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삐뚤빼뚤 서툰 글씨로 몇 줄 편지를 써서 봉투에 담고 작은 우표딱지를 붙여서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으면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아주 먼 곳에 있는 상대방에게 전해준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변하자 우체통에 넣던 손편지가 컴퓨터 화면에 띄워보내는 이메일로 바뀌더니, 이제는 핸폰 화면에서 허공에 날려보내..

사진따라 2020.07.15

장승과 벅수

예로부터 돌이나 나무에 사람의 얼굴을 새긴 푯말을 마을 어귀에 세웠는데 이를 보통 장승이라고 부른다 보통 남녀를 상징하는 장승 두 기가 나란히 서 있다 장승은 경계표시나 이정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무서운 전염병과 잡귀가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수호신이자 민간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치켜 올라가며 부릅뜬 눈과 주먹코, 그리고 귀밑까지 찢어진 입모양은 위협적이며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보기에 따라 어수룩하거나 익살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한동안 장승을 생각하다 보니 에스키모의 토템폴이나 운남성 소수민족의 조각상들도 장승과 닮은 것 같고, 등산길에서 만났던 작은 나무 조각상들은 물론이고 지리산 둘레길에 서 있던 표지판도 장승처럼 보인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장승’을 ‘벅수’라고 부르는 것이 ..

사진따라 2020.07.12

진또배기

어촌마을 어귀에 서서 마을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진또배기 진또배기 진또배기 오리 세 마리 솟대에 앉아 물불바람을 막아주는 진또배기 진또배기 진또배기 미스터 트롯에서 이찬원이 구수한 목소리로 불러서 널리 알려진 는 향토색이 강한 민요풍의 노래이다 제목이자 후렴처럼 반복되는 ‘진또배기’의 뜻을 검색해보니 동북아시아 샤머니즘의 상징인 ‘솟대’의 사투리라고 한다 장대의 사투리인 ‘짐대’에 새나 짐승의 형상물을 꽂아놓은 ‘짐대박이’가 음운변화를 거쳐 ‘진또배기’가 되었다는데 진또배기는 서낭신을 보필하고 수재, 화재, 풍재를 막아 마을의 안녕과 함께 풍어와 풍년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강릉시 강문동에는 소나무로 만든 진또배기가 있는데 높이 4.5m, 둘레 35cm의 솟대 위에 세밀하게 조각된 나무오리 세 마리가 모두 ..

사진따라 2020.07.08

못에 연을 더하니

연못에서 만난 바람1 - 김정희 연못으로 갈거나 연꽃 만나러 온 바람같이 꽃 진 자리 잎만 남아 수화(手話)를 읊조리는 곳 눈감고 헤아려보는 그윽한 영혼의 나라. 그대 말씀 언저리 산울림인가 먼 종소리 진구렁에 발 딛고 발목 빼지 못해도 빛부신 화엄(華嚴)의 날을 꿈꾸며 살라 하네. 연못에서 만난 바람 옷깃을 스치누나 저문 날 들녘에서 이마 맞대는 인연 꽃인 듯 그림자인 듯 무릎 꿇고 맞으리라. 자연적으로나 인위적으로 넓고 깊게 팬 땅에 늘 물이 괴어 있는 곳을 못이라고 하는데 못을 뜻하는 한자로는 지(池), 소(沼), 당(塘), 방축(防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못이라 하면 인위적으로 꾸민 것을 말하는데 오랜 옛날부터 농경지의 관개를 목적으로 하는 저수지와 군사상의 필요에 의한 군용지(軍用池..

사진따라 2020.07.05

연꽃의 품격

붉은 연꽃 - 목필균 살아온 길이 아무리 험한들 어찌 알 수 있을까 꼭 다문 붉은 입술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네 발자국 만나는 사람마다 환한 미소 보일 수 있다면 그 또한 훌륭한 보시라고 진흙 뻘에 발 묻고도 붉은 꽃등으로 커지는 너 연꽃은 더러운 연못의 진흙 속에 뿌리내리고 살면서도 우아한 자태로 아름답고 깨끗한 꽃을 피운다고 해서 예로부터 군자와 같은 품성을 지녔다는 칭송을 받았다 불교에서는 속세의 더러움 속에 피면서도 물들지 않는 청정한 연꽃으로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자리를 만들고, 민간에서는 종자를 많이 맺는 연꽃을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서 부인들의 의복에 연꽃 문양을 새겨넣기도 했다 인간의 마음은 원래 맑고 깨끗해서 나쁜 환경 속에서도 원래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믿고 싶은데 아무래..

사진따라 2020.07.02

나의 침실로

유튜브에서 게시물을 보고 있으면 수시로 광고가 뜨는데 나에게는 아주 낯선 수면제 광고가 상당히 자주 보인다 그만큼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 건 나에게는 언제나 ‘먼 나라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보니 편안한 침실 분위기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는 편이다 안나푸르나 트래킹 갔을 때 숙소에는 호텔, 롯지 등 그럴싸한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방에는 제멋대로 생긴 낡은 매트에 삐거덕거리는 나무 침대 두 개가 전부였다 온기라고는 없는 그 방에서 파커까지 껴입고 자야했다 친구와 함께 크루즈 여행 때 바다가 보이는 창문 대신 싸구려 해변 그림이 걸린 침실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래도 에어컨은 빵빵하게 나오니 천국이라 생각하고 벽에 높이 걸려 있는 보조침대..

사진따라 2020.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