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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꿀만한 꿈 (2002.0321)

2000년 동아마라톤 때의 일이다. 언젠가처럼 꿈이 아닌 생시에서 말이다. 그 이전까지 동아마라톤은 경주에서 열렸었다. 서울의 상황이 도심을 지나는 마라톤 코스를 운영하기가 어려운지라 생각도 못 했었는데 동아마라톤이 광화문-종로 코스에서 열기로 했단다. 항상 차가 붐비는 종로 거리를 뛴다고 생각하니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겨울 동안 전혀 달리기를 하지 않아서 도저히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출발점인 광화문에서부터 동대문까지 종로통 5키로만 살살 뛰어 보자는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을 했다. 대회당일 광화문 출발 지점인 광화문 네거리에 서니 수도 서울의 한복판을 점령한 듯한 기분이었다. (혁명군처럼!) 흥분 속에서 달리기 시작, 종로를 지나 동대문은 너무도 가까웠다. 5키로 지점..

내글모음 2002.03.21

뒤늦은 동아마라톤 참가기 (2002.0320)

지난 주 내내 머릿속에는 온통 동아마라톤 생각뿐이었다. 3.17(일)에 열리는 제73회 동아 서울 국제마라톤 대회! 광화문을 출발해서 용산-종각-동대문-신설동-군자교-어린이대공원-광진구청-잠실대교-천호사거리-길동사거리-올림픽공원-수서-잠실주경기장에 이르는 42.195키로의 코스! 토요일 밤, 동아마라톤 생각에 잠을 설쳤다.  드디어 일요일 아침! 2000년 6월 양평 하프마라톤 이후 1년 9개월 만에 처음 출전하는 공식대회. 2000년 하프코스 완주, 2001년에는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5키로를 그냥 묻어 뛰었던 바로 그 동아마라톤 출발점인 광화문에 다시 섰다. 그간의 부상을 딛고 다시 일어나 이번에는 새로운 풀코스에 도전하다니... 벅찬 감회를 억누르며 1만2천여 명의 참가자들 가운데에서 운동화 끈을 ..

내글모음 2002.03.20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 (2002.0220)

지난 크리스마스 때 가족들에게 책 한권씩을 선물했다.  아들에게는 한 청년의 ‘북극과 남극 탐험기’를, 딸에게는 어느 교수의 ‘법과 영화’ 책을, 그리고 아내에게는 이런 책이었다. 제목은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 부제는 '화가 최용건의 진동리 일기' 제목이 그럴듯해서 선택한 책이었는데 아내가 다 본 다음, 나도 읽었다. 저자 최용건(53세)은 서울대 미대를 나온 화가로 1996년 여름 도회생활을 청산하고 백두대간 깊숙이 있는 방태산 근처 마을 진동리에 ‘하늘밭 화실’을 열고 약간의 경작과 더불어 민박을 치면서 살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5년 3개월 동안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도라지 농사, 옥수수 무인판매, 토종벌 양봉 등 실패를 거듭하였지만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진 삶의 기쁨들은 마음의 곳간 깊숙이 평..

내글모음 2002.02.20

먼저 간 친구 (2002.0216)

5년 전 어느 봄 흐드러지게 피었던 라일락 꽃잎이 지던 날, 병상에 있던 그 친구는 이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를 새 집에 묻고 오던 날,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 친구는 음대에 진학해서 성악을 전공하고 싶어 했지만 부친은 그 친구의 재능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반대를 하셨다. 하기 싫은 입시공부를 하다가 재수, 삼수 끝에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 취직, 장사, 노가다, 그리고 구름 잡는 사업까지 어느 것 하나 그리 신통한 것이 없었다. 한번 빗나가 버린 인생은 끝내 제 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고 싶었던 길을 가지 못한 한 때문인지 몸마저 병이 들었다. 그 병을 고치려고 중국 연변으로, 하얼빈으로 용하다는 한의사를 찾아 헤매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친구는 노래를 ..

내글모음 2002.02.16

지하철에서의 첫 경험 (2002.0202)

사진 펌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를 위한 경로석이라는 것이 있다. 어쩌다가 피곤할 때 그 자리에 앉아 보기는 했지만 그런 때면 영락없이 가시방석이다. 우리세대는 어려서 받은 교육이 몸에 배어서인지, 어른인 듯한 분이 앞에 보이면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 한다. 요즘도 자리에 앉아 있다가 중년쯤 되는 분이 앞에 보이면 반사적으로 일어나려고 하다가 나 자신을 다시 붙잡아 앉히는 때가 가끔 있다^^  머리가 좀 빠지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어떤 친구는 지하철에서 일부러 제일 뒤쪽 벽에 기대서 간다고 한다. 자리 앞에 서 있으면 자꾸 자리를 양보하려고 해서 그렇단다. 그 친구는 산에 가면 날아다니고 술을 마시면 아직도 말술이지만 얼굴만 보면 나이보다 10년은 더 들어 보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 친구하고 술집에서 떠..

내글모음 2002.02.02

나의 뽕짝 스토리 (2002.0120)

노래라면 대략 뭐든지 다 좋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뽕짝이다. 나의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는 동요가 아닌 뽕짝이었다. 전생에 한이 많았었는지 몰라도, 노래 가사가 뭔 의미인지도 잘 모르면서 뽕짝을 부르면 가슴 속이 조금은 후련해지곤 했다. 조그만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노래 가사를 적어 가지고 다니곤 했는데 김정구, 남인수, 고복수, 박재홍, 박경원, 명국환, 현인... 이런 분들의 노래였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무슨 일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다가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무대(?) 위에 불려 나가 노래를 했는데, 무슨 노래인가 하면 남성4중창단 블루벨스가 불렸던 열두냥짜리 인생>이었다. 나의 첫 번째 큰 무대 데뷔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때 수많은 청중 가..

내글모음 2002.01.20

춤은 곧 바람? (2002.0114)

춤(볼룸 댄스, 스포츠 댄스)을 왜 배울까?춤을 추면 바람나는 거 아닌가?스포츠댄스와 사교춤이 같은 건가, 다른 건가?  춤을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1985년쯤으로 기억하는데, MBC-TV의 아침 방송시간에 취미활동을 취재하여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느 날 이 프로그램에 볼룸댄스 강습에 관한 내용이 방영되었다. 배경은 주로 중앙일보가 운영하는 문화센터의 교육장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MBC-TV는 방송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퇴폐적인 내용을 방영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유명 칼럼니스트 이규* 씨가 조선일보에 춤의 퇴폐성에 대한 칼럼을 썼다.  그 방송 이전에 나는 바로 그 문화센터에서 한동안 스포츠댄스를 배운 적이 있었다. 그 중 몇 강좌는 내 아내와 ..

내글모음 2002.01.14

태백산 신발 도둑 사건 (2002.0113)

어제 태백산행에 우리 동행이 모두 17명이었는데 그 중에는 은퇴한 주먹 한넘이 있었다. 그넘은 우리 친구 중 어떤 녀석과 알고 지내더니 이렁저렁 많이들 알게 돼서 가끔씩 우리 산행에 따라다니곤 했다. 떡 벌어진 어깨하며, 내 다리통만한 팔뚝하며, 보기에도 벌써 한 등치 하는 폼이 심상치 않은데, 나이가 몇 살 아래라고 우리 친구들을 만나면 첫마디부터 깍듯이 형님이라 부른다.  산행 후 지하수를 사용하는 목욕탕에서 느긋하게 목욕 잘 하고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목욕탕을 나섰다. 눈에 젖은 등산화를 봉투에 담아 배낭에 넣고 가져간 운동화를 신으니 발도 한결 편했다. 이제 남은 일은 식당에 가서 잘 먹고 기차 타는 일뿐이었다. 식당에서 보내 준 봉고차를 타고 상쾌한 기분을 즐기고 있는데 그때 바로 그넘이 차에 ..

내글모음 2002.01.13

해군? (2002.0110)

인터넷 세상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며 구경하던 시절, ID라는 게 없으면 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만들긴 해야겠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40여년 동안 부르던 내 이름을 그대로 영어식으로 써 보았다. nsl, nslee, namslee... 이런 것들은 이미 등록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에는 navy, navylee를 쓰려고 했더니 이 역시 대부분 등록되어 있었다. 그 다음에는 navy69, navynams였는데, 이것까지도 가끔씩은 등록된 경우가 있긴 했지만 둘 중 하나는 가능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내 ID는 navy69 아니면 navynams를 쓰게 되었다.  그럼, 왜 하필이면 해군navy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모자라서 대학원까지 다니다 보니 군대 가는 게 늦었다. 게다가 또 ..

내글모음 2002.01.10

가출한 딸의 빈자리 (2002.0106)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씩 날벼락같은 일을 겪게 된다. 지난 여름 언제쯤이었던가, 아주 무덥던 날이었다. 딸애가 폭탄선언을 했다. 집을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순간 더위가 싹 사라져 버렸다.그리고 며칠 후 딸애는 정말 짐을 싸들고 나섰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바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야 만 것이었다. 게다가 어린 딸의 가출을 말려야 할 제 엄마까지 나서서 짐을 싸 주고 그야말로 난리 가관이었다. 나는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그날 밤 대학교 2학년인 딸애는 그렇게 학교 기숙사로 가 버렸다. 믿어지지가 않았다.딸애가 나가 버린 그날 밤, 빈방을 들여다 보면서도,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루나 이틀쯤 지나면 다시 돌..

내글모음 2002.01.06